이라크 주변 아랍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작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북한,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서 전쟁 의사를 분명히 했을 때만 해도 아랍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그러나 9월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움직임이 급박해지면서 경제지원 등 미국의 회유와 강요에 몰려 마지 못해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최근 영국 등에서조차 조기 개전 반대 움직임이 일부 감지되면서 일부 아랍 국가에서 다시 전쟁 불참 쪽으로 가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12일에는 이라크전 개전시 미군의 주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터키와 사우디 아라비아 지도자들이 잇따라 전쟁 반대 입장을 밝혀 미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터키와 사우디의 반전 행보
터키와 사우디는 이라크 북·남부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전쟁 양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다.
중동 순방에 나선 압둘라 굴 터키 총리는 사우디에 이어 12일 이란을 방문, 모하메드 하타미 대통령과 회담한 후 "역내 국가간 외교적 협력으로 전쟁은 막을 수 있다"며 "이라크전이 일어날 경우 역내 모든 국가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세제도 이날 "중동 지역에 함대와 병력이 집결하고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라크 민족은 무슬림과 아랍의 소중한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두 나라의 최종 결론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드물다. 터키는 현재 미국의 추가 영공 개방과 육군기지 제공 요구에는 확답을 피하고 있지만 이미 인시를리크 공군기지를 이라크 북부 비행금지구역 초계 활동을 하는 미·영 공군에 제공하고 있다. 사우디 역시 이라크전을 위한 미군의 기지 사용은 거부하고 있지만 5,000여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80%가 넘는 전쟁 반대 여론 속에 전쟁 발발시 막대한 관광산업 손실, 유가 불안 등 부담을 지게 되겠지만 유럽연합 가입,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등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터키는 물론 사우디도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도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변국들의 눈치보기
이라크 주변 중동·아랍국 가운데 진심으로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나라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단 한 곳도 없다.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중동 전체의 지역 안정에 큰 불안 요소가 되고 각국의 정권 안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들의 보편적인 반미감정을 고려할 때 내놓고 이슬람·아랍 형제국에 대한 공격을 찬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에 기대고 있는 아랍국 정권들은 미국의 회유와 압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일관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파병했던 시리아는 내심 이라크전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을 회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꼭두각시 정권이 등장하는 데에는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요르단은 전쟁은 반대하지만 전쟁 위기는 사담 후세인의 책임이라며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팔레스타인 출신인데다 국가 석유 수요 전체를 이라크에 의존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치른 이란도 후세인 축출은 반기지만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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