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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 16세 사기꾼 "나 잡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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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 16세 사기꾼 "나 잡아봐라"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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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유니폼 때문일까, 172m짜리 홈런을 치는 미키 맨틀 때문일까. 얄밉게도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나 잡아봐라)을 외치는 16세 사기꾼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유니폼 때문이라고, 눈 앞에서 소년을 놓치는 경력 21년의 베테랑 FBI 요원 칼 핸러티(톰 행크스)는 미키 맨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크림 통에 빠져서도 끊임없이 몸부림쳐 크림을 버터로 만든 뒤 살아 남은 인물"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 프랭크 아비그네일 시니어(크리스토퍼 월켄). 로터리클럽 회원으로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아버지를 통해 그는 세상이 당당한 유니폼에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자 충격을 받은 프랭크는 단돈 몇 달러를 들고 가출,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멋진 유니폼에 반해 팬암 조종사를 사칭한 그는 이내 하버드 의대를 수석 졸업한 의사, 예일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라고 신분을 속여가며 위조수표를 남발, 5년간 250만 달러를 벌었다. 영화의 절반 이상은 그의 기발한 사기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데 할애됐다.

그라고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기꾼 1년차에 핸러티와 호텔방에서 맞닥뜨렸으나 "당신이 좀 늦었군. 범인은 이미 내가 잡았어"라며 신분증이 든 지갑을 건네는 과감한 수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진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결혼을 약속한 간호사의 아버지가 "(보잘 것 없는 내 딸과 결혼하려는) 당신은 대체 누군가"라고 묻자 "난 의사도, 변호사도 아니고 그저 당신 딸을 사랑한다"고 답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감동적이야"였다.

'A.I'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기발한 파격적 영상을 선보였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에는 매우 순진한 시선으로 유쾌하고 따뜻한 60년대의 미국을 회고한다. 세상은 순진하고, 사람들은 의리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되찾고 싶었던 프랭크와 늘 농락당하면서도 결국 그를 믿어 주는 핸러티를 등장시켜 긴박한 추적극 대신 따뜻한 우정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창공의 제임스 본드'라는 신문기사에 자극받은 프랭크가 '플레밍'('007'의 원작자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제임스 본드와 똑같은 양복을 맞춰 입는 장면이나 이어지는 추적 장면에서 007 음악이 흐르는 설정 등은 '낭만적 60년대'를 회고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늘 찬밥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로 체면을 살릴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능숙하게 사기치고 아버지 앞에서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인간미 넘치는 만능 사기꾼 역을 그럴싸하게 소화해 낸 것도 그렇지만 옷과 머리 스타일만 바꾸면 10대로도, 30대로도 보이는 외모만큼은 아카데미감이다.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실제 아비그네일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미 FBI 역사상 최연소 수배범이었던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55)의 자서전(1980년)을 영화화한 것. 21세에 체포돼 12년형을 선고 받은 그는 5년 복역 후 나머지 기간은 FBI 금융 사기부에서 근무하며, 사기 노하우를 역으로 활용했다. 위조방지수표를 고안, 연간 수백만 달러의 특허 사용료를 받는 거물 사업가로 성공해 호주에 살고 있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지만, 영화로 만들려면 각색이 필요하다.

그의 첫번째 사기는 16세 때 자동차 면허를 딴 기념으로 아버지가 "기름이나 넣으라"며 빌려준 주유소 카드로 수 개월간 2,500달러 어치의 물건을 사들인 후 반값에 되판 것. 아름다운 부자(父子)상을 그리기 위해 영화에는 이런 얘기가 빠졌다.

여객기 조종사로 위장하는 과정은 영화와 다르다. 팬암사의 신분증을 갖게 된 것은 영화에서처럼 인터뷰 도중 항공사 간부가 거저 준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다. 팬암 신분증 납품사가 3M사라는 것을 알아 낸 그는 "많은 인력을 스카우트해 갑자기 신분증이 필요하게 됐다"며 3M 직원을 불렀고, 이 직원은 도구를 갖고 와 현장에서 신분증을 발급했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기념품에서 떼어낸 항공사 로고를 붙여 완벽한 신분증을 만든다.

영화에서 진료하는 모습은 허구로 삽입됐다. 그는 의사 행세를 했지만 병원에서는 행정직 의사로 근무했을 뿐 진료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 프랑스의 지폐 위조 공장에서 붙잡혔다는 것도 완벽한 픽션이다. 현상 수배 포스터를 통해 얼굴을 알아본 에어 프랑스 승무원의 신고로 프랑스에서 검거된 후 미 연방교도소로 이감됐다.

30여 년 전 날고 뛰던 아비그네일이 과연 지금도 과거처럼 활동할 수 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이버 거래가 늘어나 앞으로는 신분(ID) 도둑이 늘 것"이라며 "기술이 발전하면 바로 그 기술 안에 허점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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