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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43)가짜 모나미 화장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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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43)가짜 모나미 화장품 사건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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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모나미에게 격변기였다. 기업 공개와 세무조사, 성수동 공장 화재 등 3차례의 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세무 조사는 투명 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다. 기업 공개는 사세 확장의 기회를 열어줬고, 소비자들의 신뢰와 사랑으로 매출 증대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화재 사건은 전 직원에게 안전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70년대 모나미가 겪은 위기를 얘기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화가 생각나는데, 다름 아닌

'가짜 모나미 화장품'사건이다. 모나미의 유명세 때문에 일어난 일로, 세간에 알려졌더라면 화가 미칠 뻔했던 사건이다.

72년의 어느날, 젊은 아가씨 2명이 회사로 찾아왔다. 경기도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경기 보조원으로 일한다는 아가씨들은 "모나미가 피해를 보상해주지 않으면 형사고소는 물론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내겠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몹시 흥분한 상태라 나는 직원들에게 "절대 자극하지 말고 흥분이 가라앉길 기다리라" 고 지시했다. 직원들이 아가씨들을 상대로 농담도 하면서 1시간여쯤 대화를 하고 나자 그들도 마음이 풀렸는지 평온을 되찾은 듯 했다. 그 때부터 전해들은 자초지종은 이랬다.

골프장 기숙사에서 기거하며 일하다 보니 경기 보조원들은 서울 등지로 쇼핑을 하러 갈 시간이나 기회가 적었다. 그런데 모나미에 찾아오기 며칠전, 한 아주머니가 골프장 기숙사에 찾아와 경기 보조원들을 상대로 화장품을 팔기 시작했는데 상표가 '모나미 화장품'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경기 보조원들은 모나미가 만든 화장품이라고 믿고 립스틱이나 로션 등을 구입해 얼굴에 발랐는데, 그 이후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아가씨들은 "모나미를 믿고 화장품을 샀는데 부작용이 생겼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나는 일단 회사 소개 자료와 상품 카탈로그 등을 보여주며 "모나미는 절대 화장품을 만들지 않는다" 고 해명하고 얼마 안되지만 치료비에 보태라고 용돈을 줘 돌려보냈다.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경기도에 산다는 한 아가씨로부터 편지가 왔다. '20대 남자가 동네 어귀에서 가방에 화장품을 넣고 다니며 팔고 있어 봤더니 상표가 모나미이고, 화장품을 사면 모나미 노트도 한 권씩 준다고 해서 마스카라를 샀는데 그걸 바른 뒤부터 눈이 붓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항의였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 내버려 두었다간 기업 이미지 손상이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할 순 없었다. 사건이 확대되면 회사가 예기치 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범인들을 직접 잡기로 하고 몸이 날랜 영업 직원 몇 명을 뽑아 피해자가 발생한 골프장과 동네 주변을 다니며 가짜 모나미 화장품을 파는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한 10여일쯤 지났을까, 직원들이 사기범들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사기범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였다. 매일 아침 다방 등지에서 모여 화장품을 나눠주고 다음 모임 장소를 약속한 뒤 헤어지는 식이었다. 나와 직원들은 경기도 고양군의 한 다방에서 화장품을 나눠준 뒤 돌아가는 사기범을 미행해 공장을 급습했다. 공장은 허물어져가는 창고였다. 나는 창고에 있던 가짜 화장품을 모두 폐기했다. 그리고 나서 사기범의 신원을 확인한 뒤 두번 다시 가짜 화장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용서해줬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하마터면 모나미의 기업 이미지에 먹칠을 할 뻔했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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