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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6)朴鍾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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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6)朴鍾哲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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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재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숨졌다. 경찰은 박종철의 '대학문화연구회' 선배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의 소재를 캐기 위해 그 전날 자정께 박종철을 연행했다. 박종철은 취조를 받는 중에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아 의식을 잃었고, 14일 11시45분께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숨져 있었다.경찰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으로 이 사건을 쇼크사로 몰고 갔으나,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개연성을 확인한 부검의의 용기 있는 증언이 나온 뒤 고문 사실을 시인하고 수사 경관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광주 민주화운동 7주년을 맞은 그 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미사 중에 치안감 박처원을 비롯한 경찰 간부들이 이 사건을 축소 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서울 지검은 부랴부랴 경찰관 6명을 더 구속했고 정부는 관련 인물들에 대한 문책 인사를 통해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폭압 정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만큼 커져 그 해 6월 전국적 민주 항쟁의 에너지로 바뀌었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은 도저히 깰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제5공화국이라는 바윗돌에 구멍을 낸 마지막 물방울이 된 셈이다.

박종철은 경기도 마석 모란 공원의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의 상징적인 죽음에 걸맞은 곳이기도 하다. 그 죽음과 연루되었던 선배 박종운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5공 정권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나라당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 오정구에서 출마해 세간의 탄식을 자아냈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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