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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황혼人生 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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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황혼人生 또 울린다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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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오빠가 부양을 이유로 어머니 재산을 모두 자신 몫으로 해놓고 변변한 식사도 주지 않고 어머니가 계시는 골방에 보일러도 틀어주지 않아요." "옆집 며느리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방에 가두어두고 제대로 씻겨주지도 않아요." "며느리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으면 부엌을 어지른다고 야단을 쳐요. 용돈을 주지 않아 먹고 싶은 걸 사먹을 수도 없고." "자식들이 내 말에 코방귀를 뀌고 아예 말도 못하게 해요."최근 '노인학대'가 현안이 되면서 다양한 학대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까리따스수녀회가 운영하는 노인학대상담센터에는 2001년 400건 정도의 신고가 들어왔으나 2002년에는 상반기에만 500건의 신고가 들어오는 등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경제적 학대 등 심각한 수준에서, 가족간 갈등에서 비롯된 정서적 언어적 학대 등 다양하다. 신체적 학대의 가장 전형적인 것이 자녀의 정신병이나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노부모를 폭행하는 경우이다.

부모에게 재산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경제적 학대도 적지 않다. 부양을 대가로 상속을 강요했다가, 정작 부양을 회피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존속폭행이나 방치 등 심각한 학대 못지 않게 정서적 학대도 노인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된다. 정서적·언어적 학대에는 일방적인 피해가 있는가 하면, 누적된 가족간 원한이나 세대간·가치관 차이가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노인의 전화 노인학대상담센터 김은주 소장은 "노인학대라고 상담을 요청해오는 노인의 얘기를 듣고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사소통의 문제나 평소의 가족갈등이 문제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인학대에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평생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진 자녀들이 아버지의 말이라면 귀를 틀어막아버리는데 이에 대해 아버지는 '자녀들이 자신을 학대한다'고 생각한다. 쇼핑벽이 심한 70대 노모에 대해 근검절약형 며느리가 '돈만 주면 쓸데 없는 물건을 사들이니, 아예 용돈을 드리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다.

상담사례 중에는 부부불화가 모시고 있는 노부모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며느리가 남편이 없으면 식사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고, 분가한 딸들이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 갖다 버릴 정도이다. '빨리 죽지 않느냐'며 시노모에게 언어적 학대를 하는 며느리는 '젊은 시절 괴팍한 시모에게 심하게 구박받았다'고 원한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 김소장은 "이 때문에 노인학대에는 가족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심한 부양부담이 학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노인학대'의 가장 많은 경우가 노인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을 때이다. 노부모 부양을 둘러싸고 형제간 갈등이 악화되면서 노인 앞에서 언성을 높이거나 문을 쾅 닫는 등 거친 행동을 하는 것도 '노인학대'에 해당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 차라리 시설에 모시는 것이 학대를 방지하는 방법.

이렇게 가족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 가족들이 '학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된다. "'학대'라는 충격적인 어감 때문에 '학대'를 남의 일로 생각한다"는 김소장은 "노인을 방치하거나, 부적절하게 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외국에서는 '노인학대'(elder abuse)보다 '부적절한 대우'(elder maltreatment)를 거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소장은 "노인들도 집안에만 있지 말고, 경로당에 나가거나, 노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가족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학대 방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 박종숙 수녀

"노인학대가 심각한 경우를 접해도 직접 문제에 개입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2001년 3월 까리따스수녀회의 주도로 시작돼 현재 전국 11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노인학대 상담센터' 대전지부장으로 일하는 박종숙 수녀는 노인학대에 대처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노인들은 자녀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심한 학대를 받더라도 '나만 참으면 집안이 조용하지'라고 생각하거나 자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한 달에 100건 정도 상담전화가 오지만 실제 방문조사를 하고 경찰이나 지역 노인복지기관과 연결해 주는 등 문제를 해결하는 건수는 1건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가정폭력방지법'도입 이후, 경찰이 매맞는 여성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지만, 친자관계에 의한 학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집안문제'로 생각, 개입에 소극적이다. 또 자녀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정도의 심각한 학대 경우에도 노인을 모실 장소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박 수녀는 "'매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는 있지만 아직 '학대노인을 위한 쉼터'는 없어 까리따스수녀회가 노숙자쉼터에 일시적으로 노인을 모시고 있다"며 "수동적이고 거동이 불편해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운 노인을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까리따스수녀회는 학대신고 핫라인(1588-9222)을 전국에 설치하고 지하철 스티커를 통한 홍보활동을 펴는 등 그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었던 노인학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심각성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또 노인학대 개념을 정리하고, 구제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세미나를 개최했고 상속·유언등 어려운 법률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상담수녀들을 대상으로 대한가정법률상담소와 연계, 법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동선기자

사진 배우한기자

● '실버시설 노인인권' 조사

시설입소가 노인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거나 개인정보의 유출, 통신수단에 접근이 차단된 점등이 시설에서의 노인 인권침해사례로 지적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2년 11월 전국 무료·실버 요양시설 106개소의 노인과 시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설에서의 노인인권실태'에 따르면 이밖에 경로연금·교통비등의 사용에 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점, 가구나 소품 등 노인의 개인물건을 시설에 가지고 올 수 없는 점, 시설의 각종 프로그램에 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점, 시설의 종교를 강요당하는 일 등이 지적됐다.

한국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실태 파악'의 일환으로 자유권 생존권 방임등의 세 범주로 나뉘어 실시된 이 조사에서 '직원에 의한 폭행'이나 '노인의 경제적 자산 유용' 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 시설에서의 노인학대는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설 종사자들의 학대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 노인요양시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정례적인 보수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제안됐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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