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니스 100년 숙원을 풀었다.' 이형택이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정상에 오른 것은 최경주의 미프로골프(PGA)투어 1승에 비견되는 역사적인 쾌거로 평가된다.ATP투어 대회 우승은 정말 녹록치 않다. 세계테니스대회는 상금규모에 따라 크게 4대 메이저대회(일명 그랜드슬램), ATP사무국이 주관하는 35만∼200만 달러의 투어대회,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관하는 10만 달러 안팎의 챌린저대회 등 3등급으로 나뉜다.
투어 대회에서 뛰려면 전 세계 2,000여명의 프로선수 중에서 최소한 랭킹이 200위안에 들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한 시즌 투어대회 우승자는 30명이 채 안된다. 한국은 이형택을 포함, 500위권 선수가 3명밖에 없다.
이형택이 우승한 아디다스 인터내셔널대회(총상금 38만달러)는 60여개 투어대회의 하나로 상금면에서는 하위급에 속하지만, 전통과 권위는 인정받고 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있어 톱 랭커들이 대거 참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중 6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따라서 이형택의 우승은 대단한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남자테니스는 1989년 김봉수(은퇴)가 대한항공이 후원하는 KAL그랑프리 대회(현재 투어급 대회) 8강, 86년 유진선(은퇴)이 호주오픈 본선(128강)에 진출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형택은 180㎝, 75㎏의 다부진 체격으로 일찍부터 한국 테니스의 한계를 뛰어 넘을 재목으로 지목돼 왔다. 강원 횡성 출신으로 초등학교 4년 때 처음 라켓을 잡은 그는 타고난 파워와 빠른 몸놀림, 두뇌 플레이로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건국대를 거쳐 삼성증권에 둥지를 튼 뒤 99년 요코하마 남자챌린저 우승에 이어 2000년 한국 테니스사상 최초로 US오픈 16강에 진출,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1년에는 미 휴스턴 클레이코트 챔피언십서 준우승했다. 2002년 성적은 부진했지만, 지난 연말 요코하마 챌린저 제패를 계기로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편 모교인 건국대는 이형택 선수가 귀국하는 대로 대대적인 환영식을 준비중이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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