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주만에 아내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유학길. 지금은 12시간에 갈 수 있는 길을 당시는 도쿄 마닐라 방콕 카라치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서울을 출발한지 36시간 만에 밀라노에 도착,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현 세종문화회관 사장 김신환 선생님의 도움으로 라 스칼라 가극장의 지휘자 로마노 간돌피를 3개월 만에 어렵게 만났으나, 지휘자의 길을 시작한 나에게 그가 처음 한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휘는 눈만으로도, 손가락 하나로도 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건 내면에 있는 음악의 근원이다."
마치 구도자에게 내리는 메시지 같았던 그 말의 의미를 나는 훗날 무대 현장에 뛰어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 간돌피 선생의 어시스턴트(보조) 지휘자로 선택되어 라 스칼라 가극장의 제작과정에 참여하게 됐고, 그가 전임지휘자로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리세오 가극장까지 동행하며 유학생활중 예상치 않았던 또다른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유럽의 대부분 극장들은 찬 바람이 불며 시즌이 시작된다. 그 겨울 바르셀로나는 눈이 내리는 매서운 추위가 계속됐다. 거기에다 난방이 안되는 숙소,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싸구려 식사, 동전넣고 하는 3분짜리 샤워 등 혹독한 환경이었지만 그 몇 달 동안 나의 마음은 늘 풍요로웠다.
오전에는 합창과 오케스트라 연습. 밤 8시부터 자정 너머까지는 무대리허설 등 오페라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틈틈이 남는 오후 시간에 바르셀로나 시내와 무명예술가의 거리인 람브라스 광장을 누비고 다녔다. 음악가인 나와 디자이너인 아내에게 주어진 두가지 여건은 첫째 돈이 풍족하지 못하다는 것, 둘째 남는 시간에 보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이었다.
피카소, 미로의 미술관, 가우디의 건축물, 새로운 예술의 사조로 등장해 셀 수도 없이 많이 공연되는 전위예술 등등. 차비를 아끼느라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며 그때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문화의 풍요 속에서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숙소 앞을 지나는 거대한 청소차의 굉음과 추위에 잠을 깨곤 하였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꿈은 때로 아득한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하였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가난했던 시기였지만, 내 평생의 근원이 되는 가장 풍요로운 것이 그 시기에 이미 채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김 홍 식 예술의 전당 음악예술감독·한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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