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월13일 파리의 조간 신문 '로로르'(여명)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이 실렸다.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단 이 글의 필자는 소설가 에밀 졸라였다. 이 글은 1894년 10월 프랑스군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대사관에 군사 정보를 판 혐의로 체포돼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 유형 판결을 받으며 시작된 드레퓌스 사건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 가족이 간첩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해 고발한 육군 소령 에스테라지가 무죄 판결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나왔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던 졸라는 '프랑스군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진범 에스테라지를 감싸던 군부와 반유대주의 감정으로 군부 입장에 동조하던 프랑스 여론에 정면으로 맞섰다. 졸라는 이 글에서 "군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국민의 입을 군화로 틀어막고, 정의와 진실의 외침을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어떤 힘으로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고 썼다. 이 글을 실은 '로로르'의 발행인은 뒷날 프랑스 총리가 돼 8시간 노동제를 확립할 사회주의자 조르주 클레망소였다.
'나는 고발한다'가 나가자마자 졸라는 다수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이튿날인 14일자 조간들은 졸라를 '유대인들에게 매수된 미치광이' '병원에 가두어야 할 살아있는 쓰레기' 따위로 비난했다. 졸라는 곧 기소돼 1년의 금고형을 선고받았고, 선고와 동시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졸라의 이 글은 자유주의적·좌파적 지식인들과 정당이 힘을 모아 인권동맹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권동맹은 국수주의자·교회·군부가 결집한 프랑스 조국동맹에 맞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고, 마침내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이 사건을 재심해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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