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최근 미국의 변화가 수사적인 변화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한층 더 다가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의 속도가 북한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여기서 다시 한번 충격요법을 사용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본다.북한의 의도는 전략적 의도와 실질적 의도로 나눠 볼 수 있다. 전략은 미국이 이라크 전에 나서기 전에 북미간 협상의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경황이 없을 때 협상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이유는 미국의 중유공급이 중단된 이후 그만큼 에너지난이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중유공급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사실 초조하다. 이라크 전이 끝나기 전에 원하는 협상틀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레드라인(Red line)을 넘은 것은 아니다. 진정한 금지선은 북한이 수조 속의 폐연료봉을 건드리고 방사화학실험실에 들어가서 이를 재처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NPT 탈퇴는 상당히 위험한 조치이나 그 자체가 위기는 아니다.
따라서 미국은 가급적 속도를 조절하면서 북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정책 순위 1위이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2차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유엔안보리 회부를 추진하겠지만, 그 이전에 1994년 당시처럼 총회 의장성명 등을 채택하게될 가능성이 높다. 단 이번 조치에 대해 국제사회가 침묵할 수는 없으므로 대북중유공급이나 경수로 건설 중단 등의 조치는 실행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도 내심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나 힘의 충돌 국면으로 들어서는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도 여전히 핵보유 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 성 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키로 한 것은 선 핵 개발 포기라는 미국측 입장이 여전한 상태에서는 남아 있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벼랑끝 전술의 또 하나의 카드로 볼 수 있다.
대화가 불가침 논의에 관한 것이 아닌 바에는 위기를 고조시켜 카드의 단가를 높여보자는 것이다. 미국에는 새로운 대응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고, 한국에는 노무현 차기 정부에 대북 지원 패키지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차기 정부의 대북 의지를 시험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한·미 간 분열을 조장해 한국을 미국 외교 라인에서 일정 부분 떼내는 부수적 이익도 기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대북 정책에서 미국에 대해 주도적 지위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로서는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준 사례다.
외교적으로는 이번 탈퇴 선언으로 북·미 간에 주변국 붙잡기 경쟁이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이 양국 힘겨루기의 캐스팅 보트로 떠오를 것이 확실하다. 중국의 입장에 따라 북미간 대화의 균형추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NPT 탈퇴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탈퇴를 선언한 예가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번복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자존심 싸움의 성격이 강하지만 결국 북·미 간 극적인 타협을 통해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 탈퇴 선언으로 당분간 미국 정부 내에서는 대북 강경파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3,4월께 북·미 관계는 반전의 분위기를 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성 호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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