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를 바꿔 지구당을 폐지하자거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을 감사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 심사가 편할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특히 선거구제 개편문제에 부닥칠 때 여· 야를 막론하고 우리의 각 정당은 '독과점 기업식', 개별 정치인은 개인의 이해관계에 함몰되는 '구멍가게식' 계산법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대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가 여· 야 어느 일방 또는 집권당이 아니라, 과감한 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감동시키는 정당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감정의 정치전선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는 정당의 정책화와 민주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전락했음을 또한 인정하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소선거구제 하의 지구당 제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선거위원회제도의 도입이나 상향식 후보공천의 법제화를 논의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역주의 위에 올라앉아 있는 우리나라의 정당 구조가 바뀌지 않고, 정당 하부구조에 '패거리'와 '꾼'이 설치는 한 정치토양의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DJP정부가 들어선 1998년 봄 선거구제 개편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당시 토론자는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소속 중진의원들이었다. 이들은 당론에 따라 '소선거구제 유지'(한나라당), '중선거구제 도입'(국민회의)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나는 당시 서울과 광역시 내지 성남, 부천, 일산 등과 같이 3∼4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지역에서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기타 지역은 소선거구제로 하는 '복합선거구제'를 제안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울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소선거구제의 폐지에 선뜻 응했다. 한편으로 영· 호남 의원들은 지역 대표성과 특성을 감안한 소선거구제에 호응을 보냈다. 복합선거구제에 대한 정치권의 현실적 수용가능성을 확인한 셈이었다.
복합선거구제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눈치를 보는 혼합형 내지 절충형의 타협안은 결코 아니다. 복합선거구제는 영· 호남 지역대결로 상징되는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극복하여 진정한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제도이며 지역간 인구편차가 극심한 불평등 선거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광역시의 경우 인구비례에 따른 갑· 을· 병식 선거구 분할보다는 한 자치구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도록 해 각 계층별· 성향별 대표자가 나서도록 하는 것이 선거의 대표성 확보와 사표방지에 이로울 것이다.
현재 중선거구가 가능한 곳은 전체 227개의 지역구(소선거구) 중 110개 이상이므로 복합선거구제하에서도 지역통합과 전국정당화의 정치개혁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지방도시와 농촌은 행정적·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소선거구제가 무방할 것이다. 지방도시와 농촌마저 중선거구제를 일괄적으로 도입할 경우 선거구가 너무 광활해져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도리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선거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
DJ정부하에서 '동은 서로, 서는 동으로'라는 기치아래 '의원 빼오기'등을 통해 여러 차례 중선거구제로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상과 정치현실의 괴리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선거과열을 해소하고, 선거를 정책경쟁으로 유도하며, 지역편중현상을 현저히 완화시킬 수 있고, 연고선거구 상실에 따른 의원들의 반발이 적어 정치권의 수용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중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되 소선거구를 적절히 배합하는 복합선거구제의 도입을 제안한다.
박 상 철 경기대 교수 ·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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