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2000년 10월부터 병역특례요원(28개월)으로 근무하고 있는 강모(27)씨는 제대가 코앞인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B사로 옮기기 전까지 다녔던 벤처업체 H사가 병역특례 비지정업체였기 때문.강씨는 "입사 3개월 후 H사가 비지정업체란 사실을 알았으나 '병무청이 단속할 때만 인가원(TO)을 사온 회사에 출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회사측의 말만 믿고 근무를 시작했는데 들통나면 현역 복무를 다시 해야 한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한달 200만원에 연구요원 인가원 거래
병역특례 비지정업체가 지정업체에 연간 수천만원의 돈을 주고 병역특례요원을 고용하는 병역특례 인가원 불법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공계 출신 고급인력이 비지정업체인 줄 모르고 취업했다 적발돼 현역 복무를 해야 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김모(28)씨는 지난해 9월 비지정업체인 I사에 근무하다 적발돼 현역 복무 위기에 처했다. 김씨는 "지정업체인줄 알고 사장 눈치만 보며 낮은 임금과 살인적 야근을 견뎌왔다"며 "석사 학위를 지닌 전문연구요원은 매달 200만원, 고졸 이상 자격증 소지자인 산업기능요원은 매달 100만원 정도만 주면 인가원을 사온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불법거래는 연구요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병무청으로부터 인가를 받기 힘든 벤처업계 사이에서 성행한다. 병역특례 요원은 정식 사원보다 임금을 덜 줘도 되는데다 '퇴사시 현역 입대'라는 약점을 갖고 있어 경쟁회사등으로 이직을 못하는 등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벤처업체 P사 관계자는 "전문연구요원 정도의 고급 인력을 정식 사원으로 채용하면 연봉 5,000만원 이상을 줘야 하지만 인가원을 사올 경우 1,500만원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 못대는 관계당국
이처럼 병역특례 인가원 밀거래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병무청 등 관계 당국은 손을 못쓰고 있다. 병무청은 지난해 9월 병역특례요원 복무실태조사에 나서 504명을 적발, 445개 업체에 고발이나 경고 조치를 내렸지만 병역특례요원을 고용 목적 외로 근무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비지정업체 근무를 적발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특례 인가원 불법 거래에 대해 단속을 실시, 적발될 경우 지정업체에 대해서는 인가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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