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우리 인간들의 삶 자체입니다. 문학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우리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설은 인생사를 구체적으로 쓰는 '이야기'이되, 영원성을 가진 진실과 감동을 그려내는 것입니다."소설에서 왜 꼭 역사·사회의식이 필요한 것인지를 묻는 사람에게 소설가 조정래(60)씨는 "작가에게는 세상의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며 인간의 역사를 바르게 이끌려고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답한다. 그가 등단 33년만에 처음으로 낸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문학동네 발행)는 독자에게 보내는 다감한 편지다. 자신의 소설의 바탕과 뿌리를, 작가의 의식이라는 나무가 어떻게 가지를 뻗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도록 모은 글이다.
그는 "이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며 글을 쓰다가 갈 예술가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작가의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산문의 형식이 부담스럽다면서도 그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작가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이며,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답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민족사 1세기를 소설로 옮기는 작업을 마무리하기까지 그는 내내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소설이라고 써? 가족을 몰살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전화에 밤새 시달리기도 했고, '빨갱이'로 고발당해 몇 날 밤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아내를 불러다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몰라. 그땐 당신도 아이 데리고 잘 견뎌야 할 텐데…"라고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했다. 그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역할이 인간다운 삶의 길을 모색하고 역사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렇게 엄격하고 단호한 그의 모습 뒤에는 손자의 재롱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할아버지의 즐거운 웃음이 있다. 세상사에 웃을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손자를 보면서 삭막한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며느리도 자식이니 애비의 창작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며 '태백산맥' 전문(全文)을 베껴 쓰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아들이 대학생 때 받았던 숙제다. 인도와 중국 만주, 영국 등을 기행하면서 건져올린 사유, 좋은 우리말을 두고도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통일을 향한 열망도 산문집에는 진솔하게 담겼다. "솔직함이라는 성격 때문에 소설가의 산문은 소설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라고 늦은 산문집의 의미를 밝힌다.
문학이 인간의 삶의 진정성을 탐색하는 것이라면,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조씨는 "누구나 홀로 선 나무. 그러나 서로가 뻗친 가지가 어깨동무 되어 숲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답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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