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지음 푸른역사 발행·1만6,500원근대(Modern)란 말은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일제 강점 이전 우리 사회에도 자본주의의 싹이 존재했다는 반론도 있고 최근에는 '탈근대' 논의가 한창이지만 이 또한 '근대=역사의 진보'란 전제를 깔고 있다.
18·19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은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든다. 저자인 이영석(영국사) 광주대 교수는 산업혁명의 예를 들어 "분명한 모습의 근대란 없다"고 밝힌다.
그는 산업혁명이 말처럼 혁명적, 즉 순식간의 변화로 일어난 것이 아니며 당시 영국 사회에는 변화와 함께 전통의 지속이 혼재했다고 주장한다. 근대화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영국의 근대사도 다양성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특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에 대한 강박관념 혹은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그는 이런 주장을 단정적 어조로 제시하기보다 18·19세기 영국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그리는 데 주력한다. 책 제목에 '풍경'이란 말이 붙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책은 '대(大) 브리튼'이란 국민 정체성의 형성, 런던 상인집단과 노동계급의 생활상, 영국 경제의 쇠퇴 원인 등 10가지 주제를 다룬다. 각 장이 자기 완결적 구조여서 굳이 차례대로 읽어나갈 필요가 없다.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논지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 형성과 제국으로의 발전 과정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 7,8장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개념 정의에서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유통주의적 해석과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생산 중심의 해석 등 전통 이론과 함께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케인과 홉킨스의 '신사적 자본주의(Gentlemanly Capitalism)' 등 다양한 수정주의 이론을 상세히 소개한다. 케인과 홉킨스는 산업자본보다 전통적 지주세력과 상인, 금융가들이 융합한 '신사층'의 자본 축적을 영국 경제사의 중요한 추진력으로 보고, 제국으로의 팽창도 산업자본의 독점화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의 적극적 공세의 결과로 파악한다. 이 교수는 모호한 개념 등 신사적 자본주의론의 맹점을 지적하면서도 학계를 지배해 온 "단인론적(單因論的) 역사 해석이 갖는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다.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평이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풀어내 쉽게 읽을 수 있다. 또 들판에서의 민중 놀이로 시작된 축구가 중간계급의 후원과 관심 속에 근대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19세기 말 시험제도가 등장해 관료를 공채하긴 했지만 시험과목이 옥스포드, 케임브리지대 출신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완전한 경쟁이 아닌 '연줄과 경쟁의 공생 관계'를 낳았다는 시험의 사회사 등도 다뤄 머리를 식혀가며 읽을 수 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