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외부 기고 칼럼이 김대중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라고 주장한 데 대해 정부가 항의 서한을 보냈다. 미국의 보수 논객 로버트 노박이 쓴 칼럼은 '한국 자기날개를 시험할 때'라는 제목 아래, "미국은 한국인들에 대해 점점 참을 수 없게 돼 가고 있다" 면서 "한국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은 1981년 한국 군부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구출됐으나 한국 역사상 가장 반미적인 대통령임이 입증됐다"면서 "김 대통령의 추종자인 노무현 당선자는 한술 더 떠 엉클 샘(미국)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거의 막말을 했다.■ 정부가 주미공사 명의로 보낸 항의 서한은 "노박의 기고는 국가적 자존심을 공유하려는 여러 사회현상과 운동을 단순히 반미주의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피상적인 관찰인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반박했다. 또 김 대통령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김 대통령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면서 "최근의 수차례 공식연설에서 미국이 한국의 최대 우방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이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다는 사실도 들었다.
■ 노 당선자의 대선 승리 이후 미국언론에 한국관련 기사가 폭주하고 있다. 미국의 잣대로 한국상황을 재단하면서 우려를 표명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자체가 틀린 것도 있다. LA타임스가 비록 외부기고이긴 하지만, 노 당선자를 북한의 대통령 당선자라고 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노 당선자의 캐리커처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것을 잘못 썼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정보와 연구가 부족함을 말해주는 부분들이다.
■ 미국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면서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비단 보수 논객들만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거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미국은 한국을 너무 모른다. 한국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높아진 국가위상에 걸맞게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미국 조야의 한국문제에 대한 인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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