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내정된 움베르투 코엘류는 감독직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일궈낸 성과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속내는 모르겠지만 다소 의외다. 1996년 초 포르투갈에서 직접 겪어본 코엘류 감독은 낙천적인 성격인데다 항상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실제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가 떠날 무렵인 지난해 7월 축구계에선 차기 감독을 누가 맡겠느냐는 말이 나돌았다. 월드컵 전에는 목표가 고작 16강이었는데 8강을 뛰어넘어 4강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거둔 만큼 다음 목표는 최소 3위인데 그게 가능하냐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외국인, 특히 다혈질인 포르투갈 출신의 코엘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포르투갈 대표선수와 감독을 역임할 정도로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하다. 또 통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대표팀 감독의 필수 덕목이다. 체질상 우리처럼 과거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덜하다고 믿는다.
물론 코엘류 앞에는 히딩크 때보다 좋지 않은 여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일단 대표팀 소집규정이 바뀌어 선수들과 함께 할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히딩크는 프로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1년 6개월동안 거의 마음대로 선수들을 불러 테스트하고 합숙 훈련을 할 수 있었지만 코엘류는 길어야 한달을 넘길 수 없다. 때문에 선수들을 한 데 모아놓고 테스트하기 보다 일일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의 특성과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축구를 밑바닥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고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도 그만큼 짧아질 수 있다. 또 소집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던 우리와 달리 포르투갈은 월드컵 때도 보름 정도 발을 맞추고 출전할 만큼 단기 소집에 익숙하다. 관건은 코엘류가 얼마나 부지런히 한국 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느냐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에야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코엘류가 한국 축구의 뿌리를 든든히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에도 불구, 여전히 국제축구연맹(FIFA) 20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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