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무슨 일에나 꼬치꼬치 이유를 따지며 쉽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강압적으로 내 주장을 펼치려 해 보았자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다. 하다 못해 모든 시스템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비합리성이 있게 마련이라는 논리라도 앞세워야 한다.새해가 시작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작년 대선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신년하례식에서 뵈었던 원로들의 목소리에는 깊은 우려의 느낌이 배어 있었다. 이른바 50, 60대 세대의 상당수가 상실감에 빠져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신문을 들춰보면 세대 갈등이 시작됐다느니, 세대 전쟁이 전망된다며 호들갑 떠는 모습까지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권위주의의 틀을 유지했던 우리 사회에서 젊은 대통령의 등장이 불러일으킬 위기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대통령직 인수위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의 면면도 그런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기성세대의 다수가 개혁 주장을 물갈이 음모로 의심하며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듯 보인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과연 세대간의 전쟁일까? 물론 세대간 편차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차이가 곧 갈등인 양 몰아 부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지나친 일이다. 젊은 세대에도 25% 이상의 이회창 후보 지지자가 있을 만큼 구성이 다양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세대 갈등을 얘기할 수 있으려면 각 세대가 나름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현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존재하는가? 당장 최근의 실업률 조사를 보면 20대의 실업률이 6.0%로 전체 평균 2.7%의 두 배 이상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며 언제 시위 한 번 벌인 적 있는가?
지금 젊은 세대가 주장하는 것은 세대의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앞세우는 것은 낡은 구조의 개혁이나 자주적인 국가의 수립 등 보편적인 가치들이다. 백보 양보해 그것을 젊은 세대의 주장으로 받아들인다고 해 보자. 그렇더라도 기성세대가 뒷전으로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며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의 주장에 대해 기성세대 나름의 답변을 마련하는 것이다.
흔히 기성세대는 보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지하듯이 보수가 곧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가 되려면 보수에도 논리가 있어야 한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해야 할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지금 젊은 세대의 문제 제기는 기성세대에게 하나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다듬어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기회 말이다.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 맞서 기성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화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지난 몇 년간 기성세대의 목소리는 심한 억압을 받아 왔다. 일부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에 묻혀 다수의 합리적 기성세대가 도매금으로 넘어간 적도 적지 않았다. 젊은 세대의 도전은 기성세대 스스로 이 기득권의 허위 의식에서 벗어날 계기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지닌 큰 장점 중 하나는 전문가에 대한 존경심이다. 매니아 문화에 젖어 자란 젊은 세대는 전문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면 자발적으로 권위를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합리적 기성세대가 될 수만 있다면 세대교체 따위의 허상에 속아 젊은 세대의 부상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 떨고 있는가? 그렇다면 혹시 내가 수구주의자는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정 준 영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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