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읍내 마을에서는 닷새에 한 번씩 저자가 열렸다. 울타리 밖은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은 마당이었다. 울타리는 곧 허물어졌다. 마당에서 유기전이 열린다. 드팀전이 벌어지고 어물전이 벌어진다. 고함 소리, 웃음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던 한숨 소리. 한바탕 난전을 피운 다음날 저잣거리에는 허섭쓰레기만 굴러가고 있었다. 울타리를 넘나들며 자라난 소년은 오랫동안 떠도는 장꾼들의 땀 냄새를 잊을 수 없었다. 김주영(64)씨의 역사 장편소설 '객주(客主)'(전9권) 개정판이 나왔다. 1981년 3월 초판본이 출간됐으니 22년 만이다.어렸을 적 시골 장터에서 만난 따라지 장사꾼들의 질기고 끈끈한 삶에 오래도록 붙들려 있었으며, 작가가 되어서도 강렬했던 인생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배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감에 부대꼈던 그이다. 이 강박감이 조선 후기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는 보부상들의 밑바닥 삶 얘기를 걸쭉하게 들려준 '객주'로 결실을 맺었다.
지금까지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해 왔던 것을 개정판부터 문이당으로 옮겼다. 새로 교정을 봤다. 어려운 한자 숙어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 썼다. 각 부의 말미에 따로 모아두었던 낱말풀이를 각 페이지 아래 각주로 옮겼다. 평론가들의 해설과 방담을 실은 '객주 재미나게 읽기'도 부록으로 함께 나왔다. 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김주영씨는 "다시 한번 꼼꼼하게 만들어서 서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개정판의 의미를 밝혔다.
40대 초반 5년 여를 작품에 매달렸지만 지치지 않았다. 그때의 근력과 열정이 이제는 남의 일처럼 부럽다면서 김씨는 웃는다. '객주'는 발로 뛴 소설이었다.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장이 서는 곳마다 돌아다녔다. 소설을 쓰는 내내 시장에서 장돌뱅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마음에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밤새도록 사전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래도 찾지 못한 날 새벽에는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채집한 언어들이 작품 속에서 살아서 펄떡거린다. 장꾼들의 대화 몇 구절. "내가 소문난 장안 갑부는 아니네만 내가 지고 있는 식대 뿐이 아니라, 이 하찮은 시골 객점을 도거리(따로따로 나누지 않고 한데 합쳐 몰아치는 일)로 산다 하여도 가전 치를 형편은 되니 너무 짓조르지 말게." "남의 집 금송아지가 비루먹은 우리 집 개보다 못하더라고, 남의 전대에 든 거금이 내 수중의 서푼보다 달가울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입말이 흘러넘치는 '객주'의 공은 무엇보다 민중의 힘을 찾아내 빛을 주었다는 데 돌려져야 할 것이다. 이름 없이 묻혀졌던 민초에게 이름을 주었으며, 그들의 고단하고 거친 삶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를 증언했다. 김씨가 강조했던 민중의 힘은 그러나 출간 당시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군사 정권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984년 본격적인 평론으로는 처음 발표된 평문 '민중적 삶의 구체성'에서 김치수씨는 "문학은 곧 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작"으로 평했다. 김씨는 "소설 '객주'에는 주인공이 없다. 역사의 행간에서 잊혀져 버린 떠돌이들의 행로를 추적한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이 떠돌이들을 침묵과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고 이름을 붙여주고 역할을 주었다. 19세기 말, 상로를 침범한 왜상과 청상에 당당하게 맞선 상인 천봉삼, 장사치로서의 도리와 수완을 가르친 조성준, 자신을 보쌈질한 남자를 도리어 조력자로 만든 백정의 딸 월이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객주'의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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