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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 "세상은 이미지 투성이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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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 "세상은 이미지 투성이인지 몰라"

입력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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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의 귀여움, 잉그리드 버그만의 고상함, 마릴린 먼로의 섹시함… 이런 모든 요소를 갖춘 여배우는 가능할까. 하지만 감독들은 오히려 이런 배우가 존재하는 게 더 골치 아플지 모른다. 제작자는 이런 배우를 잡아오라고 닥달할 것이며, 캐스팅을 한들 그녀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주는 게 골치 아플 테니까.영화 '시몬'(S1mone)은 '시뮬레이션 원'의 줄임말로 가상 배우를 만들어낸 감독의 이야기이다. 감독 빅터 타란스키(알 파치노)는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지만, 잇단 흥행부진으로 제작자인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감독으로서도 이제 파산선고 직전. 야심작 '선 라이즈 선 셋' 촬영 중 콧대 높은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촬영장을 뛰쳐나가며 그의 인생은 끝장나기 직전이다. 그러나 팬이자 컴퓨터 엔지니어인 행크가 자살하며 남겨준 유품으로 그는 기사회생한다. 사이버 여배우 프로그래밍 프로그램을 얻은 빅터는 시몬(레이첼 로버츠)을 주인공으로 '선 라이즈 선 셋'을 완성, 대단한 호평을 받는다.

빅터에게 시몬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여배우이다. 조금만 떠도 배은망덕했던 여배우들과 달리 그녀는 늘 "빅터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당연한 일. 그녀의 모든 대사와 말은 모두 빅터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시몬은 그에게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위노나가 "전에는 미안했다"며 차기작 출연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왔을 정도니까. '한 명을 속이기는 어려워도 10만명을 속이기는 것은 쉽다'는 빅터의 소신은 영화 내내 '시몬'의 존재 증명을 위한 갖가지 '쇼'를 보여주는 것으로 완성된다. 시몬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그는 홀로그램을 이용해 수만 명을 모아 놓고 콘서트까지 마련한다.

세상을 속이며 희희낙낙하고, 세상을 너무 많이 속였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감독의 속내를 중년의 알 파치노는 '더 이상 노련할 수 없는' 연기로 펼쳐 보인다. '여인의 향기'에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운 탱고를 동시에 보여 주었던 알 파치노의 이중적 매력을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시몬'은 실제가 아닌 이미지에 끊임없이 현혹되는 현대사회를 갈파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스타를 만들기는 하지만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 창작자의 아픔을 그린 '스타 탄생'의 씁쓸함에, 위기를 통해 흩어진 가족이 다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설정을 합친 영화. 감독 앤드류 니콜은 몰래 카메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트루먼 쇼',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가타카'의 감독. 레이첼 로버츠는 캐나다 출신의 모델로 영화의 크레딧에 '시몬'이라는 이름을 올릴 만큼 철저히 베일에 싸여 "진짜 사이버 배우냐"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물론 제작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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