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주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앞으로 '동교동계'라는 말이 나와서도 안되고 모임이 있어서도 안되며 이를 이용해서도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대통령의 해산 명령은 분명하고 구체적이다.동교동계는 계보 이상의 의미를 갖는 모임이었다. 김대중이라는 파란만장한 정치인을 보좌하며 30여년의 군사독재를 겪어온 그들은 고난을 통해 뭉친 동지였다. 김대중씨는 그들에게 계보의 보스가 아니라 봉건시대의 영주와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1997년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들은 30년 한을 풀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대통령으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는 처지가 됐다. 정권을 재창출한 민주당에서는 퇴진 압력까지 받고 있다. 집권 초기에 개혁을 외치던 그들은 이제 개혁대상으로 공격 받고 있다.
5년전 동교동계는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떳떳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자랑스런 경력이 있고, 버스값이 없어 걸어 다녀야 했을 만큼 축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탄압 받는 야당생활을 통해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강한 의지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탄압받던 시절의 물샐틈 없는 결속감을 집권 후에도 유지했다는 것이다. IMF사태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매도하면서 상대적인 우월감에 들떴던 것도 자만심을 키우는 원인이 됐다. 끼리끼리, 형님 아우하며 국가경영의 바둑돌을 놓는 동안 그들은 아무런 견제 없이 온갖 비리에 빠져들었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거목 아래서 성장해 온 동교동계는 그에 걸맞는 정치적 신념이나 책임감을 키우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 싸웠다는 사람들이 국민경선으로 선출한 자기 당 대선후보를 흔들고 내팽개치는 어이없는 추태를 보여 오늘의 어려움을 자초했다. 개혁의 꿈은 개인적인 이해관계 앞에 무력해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탱할 도덕성과 명분을 잃었다.
동교동계의 몰락은 모든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노무현 당선자와 그 측근들에게 교훈이 될 만 하다. 노 당선자는 자신을 보좌하는 팀과 인수위를 측근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측근 배치가 나쁠 것은 없다. 정권창출을 위해 노력해 온 당선자의 측근들이 대통령의 개혁작업에 동참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또는 자신들이 주축이 되어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진다면 그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지만 실패에는 수많은 지름길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끼리끼리 팀을 짜서도 안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야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막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산 명령은 5년전에 나왔어야 한다. 그랬다면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의 비리뿐 아니라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추상 같은 해체 명령이 민망하게 들리는 것은 대통령 자신도 동교동계의 도덕적 해이에 일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경영하고 권력을 다루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두렵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칼날 위를 걸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엄격해야 측근들이 따르고 그러한 긴장이 공직사회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
최근 당선자 내외가 골프연습장에 갔다고 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서민의 대통령이라고 내세우더니 당선된 지 며칠 됐다고 골프를 치느냐는 것이다. 귀 기울여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선자 부부의 골프장 출입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좀 느슨하다는 인상을 준다. 골프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내세워 온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에 골프를 안치겠다, 기업인으로부터 일전 한푼도 안받겠다, 청와대 손님 접대 메뉴를 칼국수로 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 그렇게 엄격한 맹세를 했는데도 아들과 비서진의 부정을 막지 못했다. 권력주변의 부패를 막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모여 성공적인 임기말을 자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영을 두려워 해야 한다. 도를 닦듯 경건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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