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37)기업공개 이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37)기업공개 이후

입력
2003.01.06 00:00
0 0

재무부 청사를 나와 회사로 가는 동안 나는 눈앞에 닥친 위기에 온 몸이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을 느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임원들에게 정부가 모나미를 증시에 상장할 방침이며, 그 방침은 절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침묵 만이 모나미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의 강도를 실감케하고 있었다.모나미 주식은 1974년 6월 26일 증시에 상장됐다. 발행 주식수는 총 86만4,000주, 주당 액면가 500원, 기준가도 500원이었다. 첫날 하루 동안 거래된 모나미 주식은 총 450주였고, 종가는 550원을 기록했다. 요즘이야 주식 상장이나 등록이 축하할 일이지만 당시 모나미는 정반대였다. 주식이 상장된 날로부터 모나미의 모든 거래가 낱낱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나와 모나미 직원들의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과연 언제부터 매출이 떨어질까, 이대로 업계 1위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일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해 8월말 나는 판매·영업 담당 실무자들을 모아놓고 매출 실적 점검 회의를 열었다. 증시 상장 이후 2개월여만에 연 회의였다. 그런데 결과는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지역별 담당자들의 보고와 본사 매출 장부상에도 지난 2개월여 동안 모나미의 매출은 전혀 줄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각 지역별 판매량을 점검해보니 매출은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조금씩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보고를 통해 매출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소 안도하고 있었지만 2개월여 동안의 매출을 종합한 결과다 보니 나는 기쁘다기보다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역별 판매·영업 실무 책임자들에게 "도매상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며 "본사 직원들이 직접 도매상들을 돌아보고 실제 모나미 제품에 대한 수요 및 판매량을 점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거래 내용이 다 공개되는 모나미와 거래를 계속할 경우 무자료 거래를 할 때보다 수십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도매상들이 오히려 모나미 제품을 더 공급받아 팔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을 둘러본 직원들의 보고는 한결 같았다. 도매상들이 오히려 모나미 제품을 더 달라고 조른다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직원들로부터 그 이유를 전해듣고 나서 나는 내 귀를 몇번이나 의심해야 했다.

사정은 이랬다. 도매상들은 모나미의 주식이 상장돼 거래 내역이 모두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실제로 소매상에 대한 모나미 제품 출하를 중단하거나 공급량을 대폭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대신 소매상에겐 기존 거래 관행대로 무자료 거래를 하고 있는 다른 업체의 제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도매상들은 자신들이 의도한 만큼의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소매상들이 "다른 회사 제품을 갖다 놓았더니 손님들이 사질 않는다" , "손님들이 모나미 제품이 없다면서 발길을 끊고 있다"며 도매상들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도매상들은 "종전대로 모나미 제품을 달라"는 소매상들의 아우성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제 아무리 소매상을 상대하는 도매상이라지만 소비자가 외면하는 제품을 계속 공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감동했다. 소비자들의 '모나미 제품 사랑'이 그 정도인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와 도매상들은 그 때 이후 '결코 자만하지 않고, 한결 같은 품질을 유지하면 소비자들은 모나미 제품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