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국내 대표적 온라인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 개발실. 80여명의 직원들이 3차원 온라인게임 리니지2의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100대 가까운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가 사무실을 꽉 채우고 있는 가운데 모든 직원들이 연말도 잊은 듯 일에 몰두해 있었다. 한편에서는 50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몬스터와 아이템을 디자인하느라 마우스를 분주히 움직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이 테스트를 반복해가며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있었다.아래층은 서버실. 국내 리니지 이용자 12만명이 동시 접속, 게임을 할 수 있는 용량인 120대의 서버가 풀가동되고 있었다. 이 회사의 김주영 팀장은 "이 시간에도 국내는 물론 대만에 16만명, 일본에 2만명이 서버에 동시 접속해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고도성장 신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13배나 높은 초고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온라인게임은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CT) 산업이 왜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는 1,550억원의 매출을 올려 2001년에 비해 25% 성장했고, 역시 같은 온라인게임업체인 넥슨과 액토즈소프트의 매출은 각각 73%, 125% 성장했다. 이에 따라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도 1999년에 863억원, 2000년에 1,628억원 규모에서 2001년에는 2,985억원대로 늘어나 매년 8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한국은행이 추정한 지난해 국내 GDP 성장률 6.1%의 13배에 달하는 수치다.
온라인게임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맹위를 떨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글로벌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를 들고 대만 시장을 점령한 이후 2001년에는 중국에서 액토즈소프트가, 2002년에는 일본에서 그라비티가 각각 동시접속자수 60만명과 6만명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해외시장에서 더욱 성공
특히 중국 언론은 한국의 게임이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휴대폰에 이어 온라인게임 시장마저 '한조(韓潮·한류)'의 포위망에 빠졌다"고 우려를 표시할 정도다. 2001년 8월 중국 서비스를 시작한 액토즈소프트의 '미르의 전설2'은 1년 만에 동시접속자수 60만명을 넘기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을 휩쓸고 있다. CCR의 '포트리스2블루'도 현재 누적가입자수 1,600만명과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을 기록하며 두 번째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액토즈소프트의 배성곤 팀장은 성공 비결을 시장 선점효과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구축된 상하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점, 중국인 입맛에 맞는 무협이라는 소재를 채택한 점 등을 꼽았다.
중국보다 1년 먼저 진출한 대만도 한국산 게임이 온라인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00년 8월 엔씨소프트가 감마니아를 통해 '리니지'를 수출한 이후, 대만 온라인게임 시장은 1년의 간격을 두고 한국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면서 성장하고 있다. 대만에서 '리니지'를 서비스하는 감마니아는 이 게임 하나로 2001년 11억7,000만 대만달러(4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20억 대만달러(76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분야 수출액은 913억원으로 2001년까지의 누적치인인 375억원의 2.5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세계 시장 전망과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으로 볼 때 온라인게임이 아시아등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절름발이 성장의 극복
정보통신산업연구원은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2005년까지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1년 현재 547억달러 규모인 세계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은 36억달러로 6%에 불과하지만, 2005년에는 97억달러로 전체 게임시장내 비중이 12%로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심상민 연구원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음반 등 다른 CT산업 분야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세계 시장을 선점한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뒤처진 데 비해, 온라인게임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내에서 성공해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국내 온라인게임 업계의 앞에 탄탄대로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과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언제 도태될지 모르고, 미국과 일본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게임산업은 온라인 분야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95%의 PC게임은 블리자드 같은 외국제품에 국내시장을 완전히 내어주고 있는 절름발이식 성장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온라인게임에서의 경쟁력 우위를 일반 게임으로까지 확대하는 시너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엔씨소프트처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개발사를 인수하거나, 넥슨처럼 콘솔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술을 온라인게임에도 도입하는 전략 등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CT산업
CT란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창조, 개발 유통하는 지적 노하우 및 물리적 기술을 말한다. 하나의 성공한 문화콘텐츠는 다양한 분야로 재생산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미래의 핵심 성장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례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I'은 1억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47억2,1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는데, 이중 극장 상영 및 비디오 수입은 34%에 불과하고 캐릭터 수입이 전체의 57%인 27억 달러를 차지한다. 한때 국내에서도 미국이 '쥬라기공원' 한 편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국의 자동차 150만대 수출효과와 맞먹는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러한 CT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중공업과 반도체산업에 이어 문화콘텐츠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했다. 정보통신부도 올해 정보기술(IT) 연구개발 사업에 투자할 9,718억원을 하드웨어 기술보다는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내 업체들의 노력으로 CT산업은 최근 연평균 2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꾸준히 성장, 2001년 13조8,000억원 규모에 달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한일합작으로 제작한 '탑블레이드'가 한·일 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관련 상품인 팽이를 국내에서 150만개, 일본에서 1,700만개 이상 팔았고, 60억원을 들여 제작한 3차원 애니메이션 '큐빅스'는 지난해까지 순수익만 200억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도 한류 열풍을 몰고 오며 동남아시아에서 선전했다. '가을동화'는 13만달러(1억5,600만원)에 중국, 대만 등 5개국에 팔렸고, 사운드트랙 음반도 3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또 다른 화제작 '겨울연가'는 일본에 4,400만엔(4억4,000만원), 대만, 싱가포르 등 4개국에 50만달러(6억원)에 수출됐다. 국내에서 관객 점유율 45%를 넘으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콧대를 누른 한국영화도 수출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7년에는 수출 규모가 36편 49만달러(약 6억원)에 불과했지만 2001년에는 102편 1,125만달러(135억원)규모로 22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마시마로'는 무려 2,000여가지의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일본·동남아·북미·유럽 등지에 수출됐다. 음반은 CT 산업분야 중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으나, 가수 보아의 일본 진출 등 치밀한 기획력이 빚어낸 성공 사례도 있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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