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가 재 너머 사래 긴 밭이여."강원 동해시 망상동 장밭마을의 최진환(83)옹은 손끝으로 '사래 긴 밭'을 가리켰다. 어스름 저녁 눈 쌓인 밭이 멀리 언덕 너머로 줄행랑을 친다. 끝이 안 보인다. 하긴 밭 이랑이 얼마나 길었으면 마을이름이 장밭(長田)일까. "그리고 저 고개가 발락재여. 필 발(發)에 즐거울 락(樂). 약천 선생이 저 발락재에서 이 장밭마을을 보고 지은 것이지."
그랬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1년 여 이곳에 머물며 지금도 애송되는 시조 한 수를 남겼다. 학창시절 배운 목가풍의 절창이 애국가 일출장면으로 유명한 이곳 동해시에서 탄생했을 줄이야.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동해시는 벗길수록 싱싱한 새 모습을 드러내는 양파 같은 도시였다. 외양은 일단 누렇게 바랜 양파겉껍질을 그대로 닮았다. 1980년 동해안 최대의 산업기지를 만들기 위해 삼척군에서 북평읍, 명주군에서 묵호읍을 떼어내 동해라는 새 이름을 붙인 지 벌써 23년. 그러나 인구는 고작 3,000여 명이 늘었고, 동해안 관광객은 인근 강릉시 정동진에 죄다 뺏겼다. 북평국가산업단지 분양률은 전국 최저인 33%. 금강산 유람선도 이제 더 이상 동해항에 머물지 않는다.
"동해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느냐"는 질문에 시청 공무원마저 "옷 가게나 밥집을 해서 먹고 산다"고 털어놓는다. "일출관광으로 알려진 추암해변 촛대바위도 구름 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도 했다. 망상해수욕장 어달항 묵호항 천곡천연동굴 무릉계곡 등 뛰어난 관광자원을 갖고도 왜 이렇게 됐을까. 1997년 대관령관광특구로 지정돼 식당과 술집의 영업시간 제한까지 없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망상해변이나 무릉계곡 일대는 관광특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후8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상가가 철시할 정도다. 도시전체가 겨울바다처럼 을씨년스럽다.
동해시 최대의 번화가인 천곡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정자(42·여)씨는 요즘 동해시와 주민정서를 이렇게 요약했다. "금강산 관광만 시작되면 돈을 노다지로 벌 줄 알았어요. 그러나 관광객이 어디 동해시에서 머무나요. 저녁 때 배타고 떠났다가 새벽에 오는데 언제 동해시에 돈 떨굴 시간이 있겠어요? 그래서 금강산 관광 출항지가 속초항으로 바뀌었을 때(2001년 6월) 누구 하나 섭섭해 하지 않았죠. 요즘 젊은 애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서울로 가는 게 유행이에요."
홍순성(77) 동해문화원장은 여기에 동해시의 또 다른 고민을 덧붙인다. "인위적으로 합쳐진 도시이다 보니 정체성이나 애향심 같은 게 없어요. 임진왜란 때는 이곳 두타산성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왜병과 싸웠던 충절의 고장이지요. 왜병에게 화살을 얼마나 많이 쏘아댔으면 강 이름이 전천(箭川·살내)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건 예전 북평읍 이야기이고 지금 동해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죠. 동해시에는 이제 뭔가 구심점이 있어야 해요."
전략도시 동해시는 이렇게 주저앉고 마는 것일까. 푸념과 하소연을 뒤로 한 채 찾아간 삼화동 쌍용양회공업(주) 동해공장. 진입로는 지난해 태풍 루사로 곳곳이 파헤쳐진 채 엉망이었지만 이곳에서 동해시의 첫 속살을 발견했다. 공장면적이 무려 340만평. 단일 시멘트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이다. 종업원수 467명에 연간 생산량 1,000만톤. 공장과 협력업체 직접고용(1,500명)과 납품업체 간접고용(500명)으로 동해시를 이 공장이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치만이 아니다. 석회석 탄광과 공장을 오고 가는 집채만한 트럭의 위용과 굉음. 한번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이 자그마치 열차 2량 분량인 85톤이다. 높이 30m에 달하는 거대한 '킬른'(석회석 가루를 1,350도 고열로 녹이는 일종의 용광로) 4기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빙빙 도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고 역동이다. 마치 거대한 영화촬영장 같다. "시멘트 수요가 제로가 되지 않는 한 동해시는 살 수 있다"는 직원 말이 허언이 아니다.
박상호 쌍용양회공업(주) 업무지원팀 차장은 "조그만 해수욕장에 불과했던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개발되고, 1980년 동해시가 탄생한 것도 쌍용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남북교류로 인한 건설특수가 발생하면 쌍용과 동해시는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동해시 최고의 속살은 역시 묵호항이다. 2002년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찾은 묵호항. 항구 특유의 비릿함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오간 데 없다. 묵호 출신의 소설가 마르시아스 심이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한 잔의 소주 같은 바다'라고 묘사했던 그 앞바다 풍경이 시원하다. 장밭마을에서는 노고지리가 울었다지만, 묵호항에서는 갈매기가 정신없이 꺼억 댄다. 1941년 개항 후 무연탄과 석회석의 해외수출 항구이자 어업전진기지로, 동해안 제1의 무역항으로 흥성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오전7시30분 마침내 활어 경매가 열렸다. 항구에 도착한 1∼5톤짜리 소형 어선들은 인근 바다에서 갓 잡아온 생선을 선착장에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다. 서해 항구에서는 거의 냉동생선이 주를 이루지만 이곳은 싱싱한 활어다. 가자미 감성돔 도다리 문어 도치 등이 함지박에 담긴 채 경매를 기다리는 폼이 볼만하다. 모든 사람이 부산하다. "(감성돔) 한 다라(그릇) 7만6,100원, 45번!" 경매사의 커다란 낙찰 소리에 항구 전체가 들썩인다.
물론 묵호항에도 걱정은 있다. 지난해 태풍과 물난리로 뭍에서 흘러온 뻘과 쓰레기가 인근 바다 밑바닥에 쌓이는 바람에 어획고가 급감한 것. 김인복(52) 동해수산업협동조합 경매계장은 "동해안 전체가 태풍 피해로 어획고가 전년 대비 50% 이상 줄었다"며 "그러나 태풍주의보가 내리는 날만 제외하고 1년 내내 어판장이 서는 이곳이야말로 동해시의 심장"이라고 강조했다. "고기가 잘 잡힌 날은 배 한 척 당 30만∼40만원은 거뜬하다"고도 자랑했다.
김진동 시장은 동해시의 미래를 이렇게 요약했다. "국제항이 2개나 있고 강원도 유일의 국가산업단지까지 갖춘 곳이 바로 동해시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 캠핑·캐라바닝 대회가 열린 곳(2002년 5월 망상해수욕장)도 이곳이죠. 아직 세심히 개발되지 않았고 공단 분양률은 낮지만 그래도 곳간이 넓으면 마음이 푸근한 법입니다. 강릉시 옥계면 통합, 망상 명사십리 개발, 동해·묵호항 특성화 개발 등을 통해 동해안 관광의 출발지, 북방교역의 전진기지로 거듭나겠습니다."
결국 약천 남구만의 가르침은 요즘 동해시에도 유효했다. 장밭마을에서 만난 최옹은 약천 선생의 시조를 이렇게 해석했다. "단순한 권농가가 절대 아니여. 기자 양반도 이 밭을 한번 바라보소. 소 치는 아이는 목민관, 재는 고난, 사래 긴 밭은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뜻해. 결국 이 시조는 잘 사는 동해를 만들려고 목민관과 마을 주민에 내린 엄정한 훈계여, 훈계."
/동해=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 어업종사 서원석·공화원씨 부부
"40년 뱃일만 했어. 그러니 무식하지. 어디 가서 싸우면 1등이야."
묵호항 선착장에서 만난 서원석(55) 공화원(55·여) 부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막 어판장 경매를 끝내고 그물 손질을 하는 중이다. "바쁘니 그만 가라"는 뜻일 테다. 그래도 "추운 겨울날 얼마나 힘드세요?"라는 말에 조금씩 살가운 속내를 내비친다. "애들 커가는 모습 지켜보는 맛에 이 힘든 뱃일 해온 거야. 안 그랬으면 당장 때려치웠을 거요."
동갑내기 부부는 묵호에서 태어나 스물여섯 살 때 결혼했다. 남편은 열다섯 살 때부터 배를 탔고, 아내는 결혼 후부터 탔다. 오후에 바다에 나가 그물을 치고 다음날 새벽에 그물을 걷는다. 봄 여름 가을이면 60㎞ 정도 나가 주로 꽁치를 잡고, 겨울이면 연안에서 돔 등을 잡는다. 태풍만 오지 않으면 무조건 바다로 나간다.
"오늘은 한 30만원 벌었죠. 그래도 기름값 그물값 빼면 적자예요. 이 가자미 자망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 60m에 8만 5,000원이에요. 툭하면 이리 찢기고 저리 터지는 바람에 한 달에 100만원이 그물값, 50만원이 기름값으로 나가지요. 한 달에 400만∼500만원 벌어도 인건비 빼면 적자죠. 빚이 얼마나 되냐구요? 1억 2,000만원쯤 될까?"
관절염에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다는 공씨의 하소연이다. 서씨가 거들었다. "우리 막내아들 놈은 이러더군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우면 주웠지 뱃일은 절대 안 한다'고요. 2남 1녀 자식놈들 뱃머리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합니다. 하긴 나도 뱃일은 고생 물탱이라고 생각하니까."
부부는 그러면서 지난해 동해안을 할퀴고 간 태풍 루사 욕을 했다. "육지만 물난리가 난 게 아니여. 산사태 난 뻘물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남대천 전천 타고 쓰레기와 함께 죄다 바다로 몰려들지. 지금 저 앞바다 밑바닥에는 토사가 자그마치 30㎝나 쌓였다구요.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지, 걱정이에요, 걱정."
그래도 함께 배를 타서 남들보다 고기를 많이 잡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다고 한다. "돈 때문에 싸우지 미워서 싸우지는 않는다"는 공씨의 말에는 어촌 아낙네의 속 깊은 정겨움도 배어 있다.
서씨는 "우리 큰 딸은 서울에서 큰 은행에 다닌다"며 은근히 자식 자랑을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선착장에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김관명기자
■동해시 현황/2002년 12월 현재
면적 180.07㎢(임야 77%, 경지 13%, 기타 10%)
인구 10만4,409명(3만4,200가구)
행정구역 10개동(망상 묵호 발한 부곡 천곡 삼화 송정 동호 북삼 북평)
위치 동으로 동해, 서로 정선군, 남으로 삼척시, 북으로 강릉시와 접함
항만 동해항(6개 부두) 묵호항(6개 부두) 대진항 어달항 천곡항
예산 1,656억원
문화재 삼화사 3층석탑, 부곡동 지석묘, 지향사 철불
관광지 천곡천연동굴 남구만마을 무릉계곡 망상해수욕장 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자동차전용캠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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