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의 과학영재 이렇게 키운다](2)대학교수가 나선다- 러시아 영재학교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의 과학영재 이렇게 키운다](2)대학교수가 나선다- 러시아 영재학교들

입력
2003.01.06 00:00
0 0

"테일러 정리를 유념해서 살펴봐요. 여러분 선배들도 이 개념을 미적분 문제에 적용하는 과정은 이해하기 힘들어 하니까요." 러시아의 대표적인 영재학교 모스크바국립대 부설 콜름모고르프 과학고 11학년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 시간. 백발이 성성한 모스크바대 수학과 알레리 로지디예프스키 교수는 수업시간 40분 내내 함수 기호와 수식을 칠판 가득 적었다 지웠다하며 열변을 토했다. 20여명의 학생들도 대학 수준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느라 숨돌릴 여유조차 찾기 힘든 것은 당연. 이들은 10분간의 휴식시간에도 교탁 주위로 몰려가 교수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교수님, 테일러 급수에 의한 함수 전개라는 개념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아요." "설명하신 함수에 맞는 수식 전개는 이렇게 끝나는 거죠?"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영재교육, 교수가 나섰다

1주일에 두번씩 이 학교에서 강의하는 로지디예프스키 교수는 러시아에서도 알아주는 수학자. 이 학교의 이름을 딴 러시아의 대표적인 수학자 고 콜름모고르프 박사의 직계 제자다. "대학 수업과 연구만으로도 쉴 틈이 없다"는 그가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이 학생들에게 귀한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가 뭘까?

러시아의 MIT로 불리는 모스크바 공대(바우만공대) 부설 수학·물리학교. 정규수업을 끝낸 학생들은 바우만공대 교수들과의 1대1 상담시간을 갖는다. 물리, 화학 실험실에 앉아 있는 교수들에게 10∼1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과제검사를 받고, 궁금했던 내용을 묻기 위해서다.

바우만공대 컴퓨터공학과 하르호르진 바실리 교수는 "기초 원리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대학에서 창의적인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어려워 직접 교육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11학년 카랄류프 바짐군은 "앞으로 대학에서 배울 교수님께 직접 질문을 할 수 있는 1대1 대면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러시아 영재교육의 변화

러시아의 영재교육 체계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구 소련 시절인 1960년대부터 사회주의 체제 공고화를 위한 군비확장과 산업 생산력 증가를 위한 신기술 확보를 국가과제로 삼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육성에 힘을 쏟아온 덕분이다.

1963년 모스크바대 기숙사학교로 출발한 콜름모고르프 과학고의 설립 목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88년 특별법에 의해 현 체제로 전환한 후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연방 교육부 장관에서 모스크바대 총장으로 관리 책임이 넘어오면서 학교의 교육 체계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전체 교사가 모두 모스크바대 교수로 충원된 점이다. 박사과정을 갓 졸업한 20대 조교수부터 60대의 저명한 학자까지 100명의 교사가 350명의 학생 교육을 맡는다. 바우만공대 부설 영재학교는 교사 80명 중 수학, 물리, 컴퓨터 관련 과목 절반의 교사가 공대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다.

콜름모고르프고 아나톨리 챠소브스키 교장은 "개념 설명, 실험, 세미나 등 전 과정을 모스크바대 교수가 가르치기 때문에 이미 학생들은 '예비 대학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비 대학생 교육 체계

바우만공대 부설 영재학교 재학생 325명은 입학과 함께 모스크바 공대 도서관 출입증을 받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다. 응용과학 분야 영재를 양성하는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모스크바시 출신. 기숙사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수들과의 개별 상담수업까지 마쳐도 오후 4시면 끝난다. 보리스 빠달킨 교장은 "스스로 대학 도서관에 찾아가 책을 찾고, 세미나 과제를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2∼3년 정도의 속진 학습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콜름모고르프고의 교육 목표 중 하나도 대학교육 예비과정. 재학 중인 350명의 학생들은 90% 이상이 모스크바대 기초 및 응용과학 분야로 진학한다. 러시아와 옛 소연방 국가 곳곳에서 몰려온 영재들은 이 학교 지원 이유를 '대학 교육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꼽고 있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 방식을 기르는 탄탄한 기초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지나친 속진교육은 피한다.

물리담당 세르게이 세르게이에프 교사의 설명은 이곳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고등학교다. 대학과 비슷한 방식으로 가르칠 뿐, 이들에게 대학 교과목을 그대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창의성을 기르는 다양한 실험과 토론이 러시아 영재교육의 기본 원칙이다."

/모스크바=정상원기자 ornot@hk.co.kr

■콜름모고르프 과학고 챠쇼브스키 교장

"'러시아는 영재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 원칙에 가장 충실한 게 우리라고 자부한다."

모스크바대 부설 콜름모고르프 과학고 아나톨리 챠쇼브스키 교장의 말은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아직 노벨상 수상자는 배출하지 못했지만 49명의 최고 정교수와 수백 명의 조교수 등 7,000명의 졸업생들이 러시아와 해외 곳곳의 대학, 연구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러시아 제일의 과학영재학교로 설립 40년째를 맞는 이곳에서는 지금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350명의 학생들이 하루 12시간의 수업과 기숙사 생활을 통해 미래 러시아 과학기술계를 책임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입학경쟁률이 평균 20대1을 넘었던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순수과학 위주로 수업한다는 점. 차쇼브스키 교장은 "수학과 물리 수업 비중이 50%나 된다. 영어, 러시아어, 역사 등 기본적인 과목도 배우지만 대부분 실험 실습, 원리 터득 등 기초과학 중심으로 학기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학교와 달리 학생들이 연구하고 싶을 때에는 언제나 실험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심화과제 연구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대에서 물리학 교수로 15년간 일했던 챠쇼브스키 교장이 생각하는 영재는 '빨리빨리 이해하면서 어떤 과제에 몰입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창의적인 과제 해결능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학생'이다.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의욕이 넘치고 헌신적인 교수진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생기는 과학영재학교의 수준도 교수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으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모스크바=정상원기자

■ 러 영재교육의 딜레마

세계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영재교육에도 고민은 있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 붕괴이후 나타난 혼란스러운 사회상이 교육계로까지 번진 까닭이다. 특히 영재학교 재학생 상당수가 국가 장래의 초석이 될 과학기술보다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호해 교육계의 속을 끓이고 있다.

콜름모고르프고 챠쇼브스키 교장은 "격변하는 러시아 사회가 5∼10년 후의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취직해 돈을 벌겠다는 학생들이 많다"고 걱정했다. 최근 영재학교 경쟁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취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학교 10학년 학생들 40명에게 질문한 결과 대학 졸업 후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학생은 10% 정도에 그쳤다. 물리과 10학년 바르킨 막심군은 "원래는 수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며 "친구들 대부분이 나처럼 수학, 물리에서 정보통신 업체 취직 쪽으로 꿈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바우만공대 부설 수학·물리학교 보리스 빠달킨 교장은 "대학입시에서는 경제학, 법학 등 인문계 학과가 가장 인기가 높다"며 "취직을 우선 생각하는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