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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新正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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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新正은 없다

입력
2003.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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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처럼 시간의 흐름이 엄정하게 느껴질 때도 없다. 전날까지의 들뜬 세밑 정서를 밀어내고, 새해가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엄동의 한중간을 깨고 새해가 시작된다는 점만으로도, 이 날은 우리에게 뜨거운 상징이 된다. 새 포부에 넘치는 청소년이나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노인에게, 또 고난받는 어떤 민족에게도, 새해 첫날은 갓 세수한 얼굴처럼 싱싱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새해를 맞으며 출발선상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이 희망 찬 날에 이름이 없다. 우리 달력마다 이 날이 신정(新正)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그것은 달력제조회사가 임의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행자부에 따르면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로 1월1일은 연초라 쉬는 것이다.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신정이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뜻 깊은 첫날에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은 모두의 무신경과 나태가 서글프다. 영어로는 이 날을 '뉴 이어스 데이', 일본에서는 1월과 첫날을 함께 '쇼가쓰(正月)'라고 부른다. 일제의 유산인 '신정'이 그대로 쓰이는 것은 차라리 비극일 것이다.

■ 다행히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수난을 이겨내고 부활했다. 설에는 우리 고유의 시간개념과 아시아적 문화전통이 흐르고 있다. 과거 일제는 우리 설을 없애기 위해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다. 떡을 못 만들도록 섣달 그믐께는 1주일 동안 떡방앗간을 문 닫게 했고, 흰 옷 입고 설날 세배 다니는 사람에게는 먹물이 든 물총을 쏘는 박해를 일삼았다. 지금 설을 '구정'이나 '민속의 날'로 부르자고 주장하면 펄쩍 뛸 것이다. 그런데 새해 첫날은 구정의 상대어인 신정으로 표기되고 있다.

■ 새해 벽두부터 휴일 이름을 놓고 시비하자니 죄송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나 사물에게나 이름은 중요하다. 신정을 바꿔야 하는 것은, 신정에서는 아무 공동체적 공감과 민족정서적 울림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론에서도 신정이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일본식 한자어투인 그 말에서는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문화적 찌꺼기 같은 삭막한 느낌만 든다. 새 포부와 희망을 담아 '새해의 날' '새날' 등으로 공식화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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