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선자 김일영(金一英·33)씨의 몸에는 삶의 고단한 흔적이 묻어 있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자퇴했다. 군에서 제대하고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가게에서 물건을 팔았다. 목욕탕에서 일하기도 했다. 미혼인 그는 최근 몇 년 간 웨딩 컨설턴트로 일했다. "맞는 일은 시 쓰는 것밖에 없었다"면서 김씨는 수줍게 웃었다.전남 완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는 릴케의 '가을날'을 읽으면서 "나는 20세가 넘어서 시인이 될 거다"라고 몇 번이나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김씨의 20대는 굴곡진 것이었다. 시인의 꿈은 한동안 가슴 속에 묻혀졌었다. 20대의 막바지에 직장을 방문한 영업사원의 권유로 월간 '현대문학'을 구독하게 됐다. 그의 시선을 붙잡았던 것은 학력 제한이 없다는, 중앙대 예술대학원 학생 모집 공고였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0년 문예창작과정을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세번째 도전한 끝에 시인이 됐다.
당선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는 2002년 10월에 쓴 것이다. '햇빛들이 깨어져 모래알이 되고'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시인의 꿈을 품은 청년에게 뮤즈가 빛나는 웃음을 보낸 순간이었다.
어렸을 적 삐비꽃(띠의 어린 순을 가리키는 전라도 방언)을 씹으면서 보낸 기억이 이어졌다. 그는 언제나 섬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막상 떠나온 뒤 섬은 그에게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됐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된 어머니는 여덟 남매 중 막내아들인 김씨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해녀 일로 생계를 꾸리면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는 막내의 등단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씨는 김수영과 백석의 시를 자주 읽는다. 자신이 선 자리를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김수영,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현재적 삶을 가장 진하게 드러낸 백석의 시 정신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왜 시를 선택했느냐는 물음에 "시를 쓰면서 삶과 사랑의 의미를 성찰한다. 시 쓰는 것이 나에게는 희망이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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