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智冠·71) 스님은 조계종의 대표적인 학승이자 존경받는 원로이다. 스님은 조계종에서 최연소 강사(28세) 최연소 주지(38세) 최초의 비구 대학총장(동국대)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불교 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의 편찬이다. 천년이 넘는 불교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 독자적인 불교사전이 없는 것을 안타까와해온 스님은 1983년 15권짜리 불교사림 편찬에 들어갔으며 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사재를 털어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 연구원에는 지관스님의 지휘 아래 10명의 연구원이 국내 최초의 불교 백과사전의 완성에 헌신하고 있다. 연구원 중에도 가장 열심인 연구원은 아마도 지관 스님인지도 모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연구원에서 보낸 스님은, 주지로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의 경국사(慶國寺)로 돌아가서는 다시 새벽까지 연구원들의 글을 교주보는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평생을 수행하고 가르치면서 청정한 삶을 살아온 지관스님에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산불교문화원으로 스님을 찾아 물어 보았다.대담=서화숙 문화부장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1월에 가산불교대사림 다섯번째 권이 나옵니다. 매일 연구원에 나와서 자료 찾고 글 쓰고 하는 일이 거의 같습니다.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요. 대중들과 시간을 갖다가 오전 8시 반쯤 경국사를 떠나면 9시쯤 연구원에 도착합니다." 노장(老壯)의 시봉이자 연구실장인 현원(玄元) 스님이 옆에서 "큰 스님은 밤 9시가 돼서야 연구원을 떠난다"고 귀띔해준다. 또 경국사로 돌아가서도 새벽 1∼2시가 넘도록 낮 동안 연구원들이 초벌 작업한 원고를 교정보고 직접 사전 집필을 한다는 것. 결국 하루 2∼3시간씩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사전편찬에 바치는 셈이다.
―스님 연세에 무리는 아니십니까.
"하나도 힘든 줄을 모르겠어요. 일본이나 중국에 이미 불교 사전이 있는데 우리나라만 없어요. 한 권짜리로는 나왔으나 내용이 미흡하지요. 우리나라는 가야산이니 금강산이니 하는 이름이 불교적인 데서도 드러나듯 불교 전통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 같은 사전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불교 철학 용어나 고승들에 대한 기록도 담고, 그 단어의 출전도 일일이 밝혀야 하는 일이니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옆에서 현원스님이 다시 "어느 나라나 이 같은 사전은 개인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그가 죽은 뒤에야 첫 권이 나올 정도로 고된 작업인데 큰스님은 벌써 네 권을 내셨으니 복이 많으시다"고 전한다.
―특별한 건강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늘 앉아만 있으니 시간만 나면 걸으려고 애쓰지요. 아침 저녁으로 버스로 출퇴근하니까 아무래도 더 걷게 되지요. 낮에는 대학로를 빙 돌아서 걸어오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버스를 타시는 것은 차 모는 비용을 연구원에 쓰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법문할 때 늘 자동차 타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어요. 그런데 내가 타면 됩니까. 차 갖고 있으면 경비가 많이 나가는데, 그 돈이면 연구원 두 명을 더 둘 수 있어요. 운동 되지, 사치 안 하니 복을 덜 까먹지, 나쁠 게 없지요. 상좌가 네 명인데 자기들만 차 타고 다니는 게 미안한지 내 차를 뽑았다고 해요. 그래서 가지고 오면 모조리 부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1년 째 못 가지고 와요. 버스만 타고 다녀도 편한데, 사람들이 너무 편한 것만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연구 인력이 10명이나 되는 연구원의 주차장이 이날도 텅텅 비어있다.
―인간은 점점 더 편안한 것을 추구해왔고 그런 것들이 대부분 이뤄졌는데도 행복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행복의 기준으로 재산 건강 외모 등을 꼽지만 행복은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개개인이 자신을 제대로 추스리는지에 따라 행복이 오기도 하고 불행이 오기도 하지요. 그래서 마음을 잘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에요. 말처럼만 되면 여기가 바로 극락세계게요? 우선 마음이 객관에 끌려가면 안돼요. 내가 객관을 끌어와야지요. 객관은 대상을 말하는데 재산이 될 수도, 명예가 될 수도 있어요. 내가 끌려가면 노예가 되는 것이요, 그렇게 가다 보면 온갖 함정에 빠질 수 있어요. 객관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는 것을 불교에서는 '능전소전(能轉所轉)'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마음의 삼독(三毒)을 탐진치(貪瞋痴·탐욕 성냄 어리석음)라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탐심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은 상정(常情)이지만 이 감정을 잘 소화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육체와 명예, 지식, 소유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보는 공(空) 사상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간의 현대인들이 소유욕, 경쟁심을 갖지 않기는 퍽이나 힘듭니다.
"사실 모든 것이 공(空)이예요. 세상이 공 바탕이라는 걸 알면 소유욕도 사라지게 됩니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본질은 없고 인연에 의해 흩어지고 뭉칠 뿐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본성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행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가 무엇인지, 상대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자연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이웃과의 평화 화합 공존을 고민해야 하지요. 불교에서는 자기 본래 바탕 마음을 잘 지키면 시방세계 모든 부처의 보시보다 낫다고 하거든요. 본심을 잘 지키면 남을 덜 해치고, 거짓말을 덜 하고, 욕심을 덜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만 군사의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살면서 돈도 조금 있어야 하고, 자식 교육도 잘 시켜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고 내 자식만 잘 되라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좋은 쪽으로 욕심 내는 것을 불교에서는 원력(願力)을 세운다고 하지요.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원력을 세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마음바탕을 찾을 수 있습니까. 수행법을 좀 일러주십시오.
"불교에서는 적신성불(適身成佛)이라고 해서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으라고 하지요. 염불 참선 경전수행 주력 등 사람마다 맞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처님 당시 수행법인 남방의 위파사나 수행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어요. 위파사나가 화두선을 은근히 부정하고 화두선 역시 위파사나 수행법을 소승 불교라며 부정하는데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만들었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세상에 깨끗한 것은 없다를 계속 생각하는 부정관(不淨觀)을, 마음이 산란한 현대인은 숨을 세는 수식관(數息觀)을 해볼 만합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있으실텐데요.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더 기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초발심(初發心)은 바로 성불(成佛)과 통하는 말이에요. 노무현(盧武鉉) 당선자도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을 5년 후까지 그대로 간직해야 합니다. 인재를 등용하는 데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성실하고 공심(公心) 있고 능력 있는 자를 발탁해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만 다 하면 돼요.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연결 등 남북 관계가 진전되는가 싶더니 최근 핵 문제로 또 다시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진정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분단된 지 50년이 넘었는데 쉽지는 않겠지요. 불교에서는 초부지(草覆地)라는 전통이 있어요. 풀로 진흙땅을 덮는다는 뜻인데, 승가에서는 양측의 분쟁이 끝내 해결되지 않으면 대중의 동의를 얻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풀로 땅을 덮어 버리듯 없던 일로 합니다. 남북 관계도 초부지하는 대국적 견지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양측 모두 불교의 가르침 대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노 당선자의 장인이 부역했다고 하는데도 국민들이 뽑아준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나라도 좋아진 셈이지요. 북한을 동포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도 핵만은 깨끗이 포기해야 합니다."
―한국일보 독자들을 위해 새해 법문 좀 들려주시지요.
"사실 희망이 정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도 없고 정체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희망은 잘 손짓해서 부르는 이에게 가는 거예요. 스스로 희망하는 마음을 갖고 만족하고, 산 너머 있는 노을 바라보듯이 늘 용기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정리=김영화기자 yaaho@hk.co.kr
약력
1932년 경북 영일 출생 47년 해인사 출가, 자운 스님으로부터 사미계 수지 60∼70년 해인사 강사 역임 70∼72년 해인사 주지 72∼74년 중앙종회 부의장 80년 동국대 불교대학장 86∼90년 동국대 총장 93∼96년 해인사 주지 현재 조계종 원로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이사장,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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