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새해에도 국제정세는 요동칠 것이다. 북한이 핵 시설 재가동 조치를 취하면서 동북아에는 또다른 긴장이 조성되고 있고, 유엔의 무기 사찰이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에는 언제 미국의 군사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제 외교안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장을 만나 새해 국제정치 질서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장실에서 있었다.―2003년 국제질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이라크 공격 문제가 가장 큰 국제적 의제가 될 것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유엔 결의안에 대한 '중대한 위반'을 할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도 이라크 문제 못지않게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1994년 위기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도 올 한 해 국제안보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유엔의 무기사찰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은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찾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이라크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후세인의 태도에 달려 있다. 사찰 결과 중대한 위반의 증거가 나오면 전쟁은 필연적이다. 그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이고 그 후 이라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등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후세인이 그의 생존을 위해 유엔 사찰관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한다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다. 나는 두번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이 이슬람 세계와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지 W 부시 정부는 2001년 출범 후 일방주의적 외교 노선을 취했으나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다자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 이라크 문제를 두고 부시 정부 내의 일방주의자와 다자주의자 사이에 심각한 토론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9월 12일 유엔 연설에서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 채택을 수용했을 때 그것은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 같은 다자주의자들이 논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말 폴 케네디가 '제국의 흥망'을 통해 미국의 쇠망을 얘기할 때 당신은 1989년의 저서 '지도할 운명(Bound to Lead)'에서 미국의 지배가 계속되리라고 예언했다. 그 예측은 맞았고 지금 미국에 대적할 세력은 없어 보인다. 미국은 언제까지 절대적 힘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2002년 저서 '제국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American Power)'에서 미국은 21세기 수 십 년 동안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확산할 것이고, 다른 국가나 테러 단체 같은 '비(非)국가 존재(non-state actor)'들도 점차 미국에 대적할 만한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미국은 향후 20∼30년 세계의 지도국으로 머물겠지만 그후 압도적 힘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장기적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길로 '소프트 파워'를 강화할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소프트 파워는 국제사회에서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를 강제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보다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대중문화에 기초한 소프트 파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하지만 군사적 하드 파워는 세계의 주권국가들이 경쟁하는 한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앞으로는 소프트 파워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이지 반드시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는 아니다."
―9·11 이후 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반미 감정의 뿌리는.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정책이 반미주의를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고 강력한 나라에 대해 분개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반미주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감정이 얼마나 강하게 형성되는가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달려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오만으로 흐르고 다른 국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으면 미국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감은 더 강해진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와 협력하면 반미 감정은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미군 무죄 평결로 반미 감정이 촉발되면서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될 정도였다. 한국의 반미 감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 나라에 대규모의 군대가 주둔할 때 민간인과의 마찰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마찰이 반미 감정을 부채질할 수 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미군과 한국 민간인 사이에 충돌할 수 있는 영역을 줄이는 것이다. 군 기지를 도심에서 이전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한국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중무장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한 미군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군과의 마찰 가능성과 미군 존재의 중요성이라는 대립적 개념 하에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종종 반미 감정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그러나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 놓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 봐라. 한국이 주변의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먼 곳에 떨어진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은 결코 한국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 미국은 멀리 있고, 중국 러시아 일본은 아주 가까이 있다. 그것이 한국이 통일 후에도 미군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없는가.
"미군은 한국민들이 원하면 한국에 머물 것이고 한국민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철수하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 철수를 요구할 정도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면 미국은 그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민들과 정부는 지금 미군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안보를 지키려면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평가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한반도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북한의 통일을 원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중국은 북한이 자신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아주 유사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는 데 대해 약간의 갈등을 느낀다. 중국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역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북한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중국은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북한이 중국이 너무 많은 영향력을 지니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안정화하는 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북한을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북한의 우라늄 핵 개발 프로그램 시인 이후 한반도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매우 위험한 정권이다. 그가 핵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화나 협상의 측면에서 그들이 핵을 개발하는 것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들이 계속 자원을 군사력 증강과 핵 개발에 쓰려고 한다면 한국과 미국, 일본으로부터 어떤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한·미·일 3국이 얼마나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3개 국이 공동 전선을 형성해 대처한다면 외교적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서울과 워싱턴, 도쿄 사이를 이간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을 이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면.
"한미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잘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케임브리지(미 매사추세츠주)=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조지프 나이는 누구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조지프 나이(65) 학장은 빌 클린턴 정부 초기 국가정보위원회 의장과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국제외교안보 이론가이다. 현실을 접목한 그의 안보 이론은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다극 체제보다는 미국 일극주의가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하드 파워)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 가치와 대중문화에 기초한'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력: 1937년 뉴저지주 출생, 미 프린스턴대 졸업,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1964), 이후 하버드대 교수, 빌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1994∼1995년)
주요 저서: '권력과 상호의존' '국제 분쟁의 이해' '데모크라시 닷컴''지도할 운명''제국의 패러독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