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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4) 이상한 초목과 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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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4) 이상한 초목과 광물

입력
200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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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의 식물에 대한 인식은 실제적인 용도와 신비적인 효능에 치중되어 있다. 가령 조릿대는 화살을 만드는 데에, 옻나무는 옻칠을 하는 데에, 망초(芒草)의 독은 물고기를 잡는 데에, 궤목(机木)은 노인용 지팡이를 만드는 데에 쓸모가 있었다. 서쪽의 죽산(竹山)이라는 곳에는 가죽나무 같이 생겼고 잎은 삼잎 같으며 흰 꽃에 붉은 열매를 맺는 황관(黃灌)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그 열매는 마치 황토흙 같은데 그것을 탄 물로 목욕을 하면 옴이 낫고 종기도 낫게 할 수 있었다. 중원의 고등산(鼓 □山 )이라는 곳에는 잎이 버들과 같고 밑둥이 달걀 같은 영초(榮草)라는 풀이 있는데 이것을 먹으면 중풍을 낫게 할 수 있었다.신비한 효능이 있는 풀과 나무도 있다. 가령 남쪽의 소요산(招搖山)이라는 곳에는 닥나무 같이 생기고 나무결이 검으며 그 빛이 사방을 비추는 미곡(迷穀)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것을 몸에 차면 길을 잃지 않았다. 서쪽 끝 해가 지는 곳이라는 엄자산(□□山) 꼭대기에서 자라는 단목(丹木)이라는 나무도 용한 효과가 있었다. 이 나무는 잎이 닥나무 같고 열매는 크기가 오이만 하며 붉은 꽃받침에 결이 검은데 열매를 먹으면 황달병이 나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화재도 예방할 수 있었다. 근심을 없애주는 과일도 있었다. 서쪽의 부주산(不周山)은 아득한 옛날 공공(共工)이라는 난폭한 신이 대신 전욱(□□)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홧김에 들이받아 무너졌던 산이다. 비록 상처받은 산이지만 이곳에 열매는 복숭아 같고 잎은 대추잎 같으며 노란 꽃에 붉은 꽃받침이 있는 맛 좋은 과일 나무가 있는데 그것을 따먹으면 근심이 없어졌다. 근심을 없애주는 나무는 인간 곁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다름 아닌 자귀나무가 그것이다. 잎은 아카시아 잎 비슷하며 분홍색 꽃을 피우고 저녁이면 콩과 식물처럼 잎을 축 늘어뜨리는 이 나무는 집안의 근심을 없애준다 하여 무우초(無憂草) 혹은 합환목(合歡木)이라고도 불리웠고 예부터 울안의 뜰에 많이 심었다.

고대인들은 기상 현상중 벼락을 가장 무서워 했던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중국신화의 최고신인 제우스와 황제(黃帝)가 모두 벼락의 화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벼락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풀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공포심이 컸음을 반증한다. 중원의 반석산(半石山)이라는 곳에는 키가 1장(丈) 남짓하며 잎과 꽃이 붉고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않는 가영(嘉榮)이라는 풀이 있는데 이것을 먹으면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한다. 고대인들은 인간에게 유익하거나 해로운,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을 믿었고 특정한 사물 속에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중원의 부희산(浮戱山)이라는 곳에는 가죽나무 같이 생기고 열매가 붉은 항목(亢木)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 요사스러운 기운을 피할 수 있었다 한다. 물질 조건이 열악하고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고대에 삶에 대한 소망은 신비한 약초의 출현으로 표현되었다. 역시 중원의 대귀산(大 □山)이라는 곳에는 뺑대쑥 같이 생기고 털이 나 있으며 푸른 꽃에 흰 열매를 맺는 낭(□)이라는 풀이 있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 뱃속의 병을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절하는 일이 없어졌다.

신성한 나무는 또 어떠한가. 남쪽의 먼 변방에는 운우산(雲雨山)이라는 신비한 산이 있었다. 이 산은 대신 염제(炎帝)의 딸 요희(瑤姬)가 일찍 죽어 여신이 되어 사는 곳으로 그녀가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이면 골짜기로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에 운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산은 무산(巫山)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도 불리웠다. 이 산의 붉은 돌에서 누런 줄기에 붉은 가지, 푸른 잎을 한 난(欒)이라는 나무가 자랐는데 그 꽃과 열매가 모두 만병통치의 약효를 지녀 고대의 여러 임금들이 이 나무에서 약을 얻어갔다 한다. 동쪽 먼 변방의 얼요군저산(孼搖□□山)이라는 곳에는 잎이 겨자잎 같고 높이가 300리나 되는 부목(扶木)이라는 거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상(扶桑)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고대인들은 열 개의 태양이 이 거목의 가지에서 교대로 떠올라 하루의 운행을 시작한다고 상상했다. 바다 안쪽에도 신성한 거목이 있었다. 푸른 잎에 자주빛 줄기, 검은 꽃에 누런 열매를 맺는 건목(建木)이라는 나무가 그것이다. 이 나무는 키가 100길(약 3,000m)에 가지가 없으며 위는 아홉 갈래로 꼬불꼬불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아홉 차례 뒤얽혀 서려 있으며 삼씨 같은 열매에 팥배나무 같은 잎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일찍이 대신 복희(伏犧)가 이 나무를 통해 하늘을 오르내렸고 황제도 이 나무를 소중히 여겨 보호하였다 한다. 이로 보아 건목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여 천계와 지상을 소통시켜주는 신성한 나무, 곧 세계수(世界樹) 또는 우주목(宇宙木)이다. 샤머니즘에서 무당은 이 나무를 통해 하늘과 땅을 왕래하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도 세계수와 같은 거목이 등장하여 건목과의 상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은 광물에 대한 인식도 독특하다. 중국의 대표적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을 읽어 보면 거의 모든 산에서 금과 옥이 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완전한 금속인 금에 대한 강조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지만 보석이 아닌 옥을 중시한 것은 서구 학자들도 동아시아 특유의 광물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옥은 종교적으로 특히 주목되었다. 옥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데에 효과가 있으며 신성한 존재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근래 발굴된 요녕(遼寧) 지역의 홍산(紅山) 문화나 장강(長江) 유역의 양저(良渚) 문화 등 신석기 시대의 유물에 정교한 옥 제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고대인들이 일찍부터 옥의 이러한 기능을 중시했다는 증거이다. 고대에 옥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몸을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호신부(護身符) 같은 것이었으며 신과 소통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이기도 했고, 세계의 기운을 조화롭게 다스려야 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기도 했다. 고대의 무덤에서 옥 제품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죽은 자의 시신이 썩지 않거나 그 영혼이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침해받지 않기를 바랐던 고대인의 배려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옥과 아울러 고대 동아시아에서 주목했던 것은 수은 유황 비소 등 오늘날 중금속 오염의 주범으로 위험시되고 있는 맹독성의 광물들이다. '산해경'에는 단확(丹□) 청확(靑 □) 단속(丹粟) 등 수은의 화합물과 웅황(雄黃) 등 유황과 비소의 화합물이 산출되는 수많은 산들이 나온다. 이들은 일단 실용적으로는 물감의 재료 등으로 쓰이기도 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보다 깊은 심리적 동기가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고대인들은 수은의 가변성과 환원성에 주목했는데 그들은 이러한 광물들이 평범한 인간을 완전한 신체로 변화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듯 하다. 불사약을 만든다는 발상도 이들 맹독성 광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상상력은 후일 도교에서의 외단법(外丹法)으로 이어진다. 이 외단법은 당(唐) 나라 때까지 크게 유행하였으나 도사들이 제조한 단약(丹藥) 곧 불사약을 먹고 여러 명의 황제가 급사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송(宋) 나라 이후 점차 쇠퇴하게 된다.

동물과 달리 신화적 식물은 인간에게 유해하거나 흉조를 예시하는 기능이 거의 없다. 질병 치료와 관련된 식물에 대한 인식은 후세에 본초학(本草學)으로 발전하여 한의학의 기초가 된다. 동물 식물 광물 등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고대인들의 신화적 인식을 살펴보면 그들의 상상력이 비교적 일관된 한 가지 관념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유사과학이라고도 부르는 주술적 사고로서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비슷한 원인이 비슷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예측하는 관념체계이다. 이러한 주술적 사고는 오늘날 논리와 과학의 세계에서는 배척되고 있지만 상상력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 도교의 외단·내단법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신체 곧 신선의 몸을 만드는 술법을 연단술(鍊丹術)이라고 한다. 연단술은 외단법(外丹法)과 내단법(內丹法)으로 나뉜다.

외단법에서는 수은 납 유황 비소 등의 맹독성 광물을 조합하여 단약(丹藥)을 만들어낸다. 이 단약은 일반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으며 인간이 먹으면 불사의 존재, 즉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서구의 연금술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내단법에서는 호흡수련과 명상 등 정신 수양을 통해 신체 내부에서 다시 완전한 자아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대체로 당(唐) 나라 시기까지는 외단법이 우세하였으나 송(宋) 나라 이후 선불교, 성리학 등의 영향으로 내단법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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