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31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북한 핵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강경 입장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노 당선자는 또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선 구상 등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각종 현안에 대해 소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북한 핵 문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핵 포기를 설득하겠다는 발언이 아직 유효한가.
"그 문제를 포함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대응책을 지금 구상 중이다. 핵 문제가 예상보다 좀 더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체계적 대응책에는 북한도 설득하고 미국도 설득하겠다는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는 대안을 포함시키려 한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취임을 전후해 햇볕정책과 같은 노무현 독트린 선언을 할 생각인가.
"특별 선언의 문제는 아직까지 결정된 바 없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북한 정책 결정하는 데 몇 달 걸렸다. 우리는 그런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대체로 내 희망은 1월 중 전체적 대응책을 마련해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는 국민의 정부 노선대로 가는 것이고 그것이 또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정부의 몫이다. 현 정부와 전체 기조에서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갈 것으로 본다. 1월 중 북한, 미국 등 주변 여러 국가들이 우리의 대응책을 하나의 전제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기본 원칙을 내놓을 생각이다. 북한의 의도는 협상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책임 있는 당국의 판단과 선택은 다른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맞춤형 봉쇄'등 북한 고립화 정책에 대한 생각은.
"미국이 맞춤형 봉쇄 정책을 채택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특별한 정보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한미일 공조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 문제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우리가 수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충분히 함께 논의하고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조치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는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다. 우리의 의견이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우리 정치 지도자가 이 원칙에 대해 확고한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고 국민도 이 자세를 지지해 줘야 한다. 미국의 의견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고 마치 큰 일 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정치적 주장에 대해선 참 안타깝다."
● 주한 미군 문제
―주한 미군 감축 문제와 관련된 발언을 했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나.
"새로운 정보를 접한 것은 없다. 다만 보도를 통해서 그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제한된 핵 공격을 검토했다고 보도됐었다. 주한 미군 문제를 일부러 작정하고 말한 이유는 우리의 책임 있는 단위에서 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이런 중요한 국가 문제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상황적 시나리오에 대비해 주기 바란다는 뜻이었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지금 당장 철수하니 대비하자고 말한 게 아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주한미군 감축이 있었다. 나도 감축이라고 말했다. 모든 감축은 우리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국방전략 변경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그런 결정을 했을 때 우리의 대응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지를 안보 책임자에게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 인사 문제
―국정원장 등 빅 4 인사 청문회를 새 정부 첫 인선 때부터 실시하나.
"약속대로 할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가 번복하려고 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유감스럽다. 한나라당도 의심하고 시비를 거는 방식으로 안 했으면 좋겠다."
―시스템에 의한 인사제도 도입 구상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인수위에서 발표하라고 했더니 나에게 말하라고 하더라. 우선 인사와 관련된 정보의 창구를 공개적으로 개설하려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거기에 접수토록 할 것이다. 그 이후에 추천위를 구성해서 능력과 가치 지향성에 대해 1차적으로 검증하고 나서 다시 두 번째로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하자 여부에 대해 검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안배와 조정을 할 것이다. 요즘 지역이 가장 중요하죠. 3단계 절차 중 마지막 단계에 정치적 결단이 들어가지만 1,2 단계는 철저히 합리성 위주로 갈 것이다."
―총리 인선 방향과 조각 일정은.
"추상적 원칙은 이미 말했다. 인수위 포함해 주변의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리라 생각한다. 총리 임명에 관한 한은 복잡한 검증절차 없이 추천위 거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선택하려 하지만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조각 시기는 인수위의 진행 과정과 맞물려 있다. 지금 미리 예단해 말하기 어렵다."
● 경제 정책
―당선되고 난 후 증시가 추락했다. 노 당선자가 어떤 경제정책 펴갈지 잘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투자자들은 시장의 동향을 보고 투자할 것이다. 대통령 얼굴 보고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속임수나 불투명 경영 관행을 바꿔나가겠다고 얘기한 것 외에는 기업이 그야말로 의욕 갖고 창의성 개발하도록 만들겠다."
―경제 5 단체에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급격하게 시장에 충격을 주는 조치는 없을 것이다. 경제 구조개혁을 지속할 것이다. 기존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더디고 지지부진한 부분은 정비해 나가려 한다. 지금 세계 경제 불안 때문에 투자가 저조하다. 시장 동향 말고 정부 정책으로 기업에 불편을 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노사 문화를 만들겠다. 법과 원칙을 얘기하면 노동자 잡아 넣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꿔야 한다."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공약에 대해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는 견해가 있다. 집단소송제 도입 문제 및 분배·성장 문제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완전 포괄주의는 헌법 이론상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위헌은 아니라고 본다. 위헌 논란 있으면 헌법상 근거를 만들더라도 이 법은 만들어야 한다. 집단 소송제 문제는 실상이 잘못 알려져 있다. 아주 제한적으로 협소하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입법 문제는 여러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므로 시기, 절차를 미리 얘기하기 어렵다. 분배와 성장은 어느 것이 우선할 수 없는 문제다. 함께 하지 않으면 결국 파탄에 이른다. 절대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으며 병행의 문제다."
● 행정수도 이전 문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행정수도 문제는 인수위 활동 후반기에 가서 여러 가지를 종합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추진하면서 다음 정부로 이어가도록 하겠다. 태스크포스 내에 행정 수도팀을 만들어 이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전이 필요하고 타당하다면 적지는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검토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원칙적으로는 증명돼야 하는데 상호 연관성이 있으므로 함께 검토해 나갈 것이다. 국민 토론에 붙일 것이다. 대체로 많은 국민이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정치적으로 공방이 벌어져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 국민 토론 붙이면 국민의 동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 국민투표는 지금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국민투표 거치지 않으면 동의가 안 되는 상황이 오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큰 갈등 없이 수용되면 국민투표 여부는 그 때 가서 결정할 것이다. 10년 이상 지속될 프로젝트이므로 높은 수준의 국민적 합의를 얻어 나가야 한다. 30일 충북 청주의 노인 보호시설에 갔다 왔는데 충북지사가 벌써 땅투기 부추기는 사람 있다고 걱정하는 얘기를 하더라. 지금 임시 행정수도 건설 법도 있고 여러 법도 있지만 적어도 행정수도 내다 보고 고의로 투기한 사람들이 그로 인해 투기이득 얻는 일은 없도록 나중에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 국민 통합
―선거 과정서 지역, 세대간 갈등과 이념적 괴리가 표출됐다. 통합으로 이끌 수 있는 복안이 있는가. 민주당 내 인적 청산 논의가 화합 기조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화합이다, 통합이다 하는 문제에 대해 개념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개념을 많이 확대할 경우 여야가 당을 하나로 합치면 가장 포용성 있어 보일 수도 있다. 아무나 끌어안는 것을 화합이라고 얘기하고 원칙 가지고 수용하지 않는 것을 편협하다 하면 사회 발전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편 가른다는 걱정 많이 하는데 반대자 용납 안 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 그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편 가르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 가르치는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주사파라고 한다. 상대 존중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다른 지역 사람 몇몇 끌어들여서 포용했다고 하면 안 된다. 민주당 인적 청산 주장한 바 없다. 인적 청산이 아니라 새 정치 주도 세력이 당을 개혁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실현하는 게 좋겠다는 당원으로서의 희망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그렇게 가는 데 협력하면 모든 사람이 다 기여할 수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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