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으로 북한과 미국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난 19일 우리는 북한 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선택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미국의 부시대통령에게는 전혀 상반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우선 김정일에게 햇볕정책 계승자의 집권은 고무적이다. 더구나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반미정서가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점 또한 대미 전략상으로나 남북협상에서 더없이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출범에 앞서 핵 시설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더니 급기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의 출국을 요구하며 긴장의 수위를 급속도로 높여가고 있다.
반면 부시 미국대통령에게는 한국의 새 질서가 개운한 일은 아닐 것이다. 주변국과의 협력으로 김정일 체제를 고립시키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여 핵개발을 포기하게 하려는 전략이 일단 차질을 빚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50년간 혈맹관계를 유지했던 한국에서 아랍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반미감정이 분출하고, 급기야 미군기지에 화염병이 날아들고 외출장교가 폭행 당하는 우려할만한 사태가 일어났다.
새 대통령선출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나라가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확실하기만 하다. 많은 국민은 노무현 당선자와 그 참모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 갈 것인지 긴장하고 있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도 그렇지만 9·11테러사태 이후 미국도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대 테러전쟁 열풍 속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그간 한반도에서 전쟁은 피해야 하며 북한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이런 수사(修辭)만으로는 서로 마주보고 달려오는 북한과 미국의 충돌을 멈추게 하기가 어렵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쟁과 평화는 국가안보의 핵심이다. 그것은 표를 찍어준 지지자를 위한 공약의 문제도 아니고 도덕적 가치의 문제도 아니다.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또 위험을 예방하는 것은 대통령의 냉엄한 현실적 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노 당선자는 북한의 핵무장과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판단해야 할 때다.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우선 김정일은 자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핵개발만이 자신의 체제를 지켜 줄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했느냐는 논쟁거리지만 그대로 두면 핵무기를 만들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무장은 결국 일본의 핵무장화를 부르면서 동북아 질서의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한국에게 전략적 위협이자 현실적 위험이다. 미국의 문제이기에 앞서 우리의 안보 문제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우리를 당장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일부의 시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북한의 핵 무기에 대한 열망을 어떻게 바꾸게 하느냐는 것이다. 국제적인 압력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함이 드러났다. 최선의 방법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길이다. 이것은 노 당선자의 대북정책과도 부합된다. 이미 북한은 거듭해서 불가침협정만 수용해주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적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고 까지 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노 당선자와 부시대통령이 특사교환과 직접 회담을 통해 인간적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이 문제의 물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두 젊은 동갑내기 지도자의 화통한 대화와 협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켈리특사의 방한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김 수 종 논설위원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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