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 최대 통신 관련 전시회 'PT/EXPO COMM 차이나 2002'는 한국, 유럽, 일본의 3파전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눈길을 끈 기업은 중국의 중싱(中興·ZTE)그룹이었다. 중싱이 내놓은 3세대 이동통신 솔루션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장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중싱은 이미 지난해 8월 인도 CDMA 무선가입자망 장비(35만 회선 규모) 입찰에서 한국 업체들을 누른 바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계의 4대 메이저인 쥐룽(巨龍), 다탕(大唐), 중싱, 화웨이(華爲)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중국 PC 시장의 80%는 중국 토착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다. TCL, 중국과건(中國科建) 등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는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분야에서도 다국적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FDI)를 통한 첨단기술 이전으로 줄기차게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토착 기업들의 급부상에 대해 해외 업체 현지 실무자들은 "호랑이를 키웠다"고 말한다.■기술 뛰어넘기 발전전략
중국의 첨단기술 전략은 '기술 뛰어넘기'로 표현할 수 있다.
유선통신이 어느 정도 발달한 후 무선통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유선통신 단계를 뛰어 넘어 곧바로 무선통신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VCR 단계를 뛰어넘어 DVD가 대중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통신에서도 중점을 두는 분야는 3세대 이후 기술이다.
기술도약을 위해서는 중간단계의 기술을 생략해야 한다. 그런 만큼 기초 원천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으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다. 상용화, 응용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 원천기술이 부족한 한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과의 협상에서 내놓을 카드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후발국들이 모방에서 혁신단계로 이행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기술도약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뛰어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상당 수준의 기술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이 뒷받침돼 있는데다 국방과 우주분야에 대한 지속적 투자로 기술적 기반이 구축돼 있다는 의미다.
거대 규모의 과학기술 인적자원도 빼놓을 수 없다. 2만여 개의 연구기관과 755만 명의 연구인력은 질은 차치하더라도 특정 분야에 대한 집중이 이뤄질 경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요인은 FDI에 의해 경영 노하우와 기술이전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FDI는 대부분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가공생산 거점 구축에 집중됐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공략이 본격화하면서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내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이 급증하고 있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에서 120여 개 기업이 중국 내에 R& D센터를 설립, 현지 연구인력을 고용해 현지 사정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시장과 기술 바꾸기 전략
중국 정부도 적극적이다.
4월 중국은 '외상(外商)투자목록'을 발표하면서 기술 없이 돈만 들여오는 투자는 원치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시장을 기술과 바꾸는 전략'에 따라 첨단기술 이전을 투자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기업들도 중국 시장을 확실히 공략하기 위해 핵심기술을 제외한 첨단기술은 과감하게 이전하고 있다.
7월 한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내 R&D 거점에 대한 기술이전 내용 중 중국에 없는 기술이 76%에 달했다. 중국 내에서 선진기술에 해당하는 것도 24%를 기록해 중저급 기술을 위주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R& D 센터'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해외유학 인력과 해외근무 인력이 중국으로 복귀하는 경향은 기술발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해귀파(海歸派)로 불리는 이들은 해외 첨단기술 생산지역과 기술, 인맥, 자본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국의 기술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수는 6만 명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실리콘 밸리에 근무하는 중국계 기술인력만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해외 유학파 귀국·창업 러시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IT 분야의 경우 지난 한해 1,000명 이상이 귀국해 창업하거나 중국 기업의 핵심기술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미국 MIT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인재 유치를 위해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중국으로 돌아 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해외 유학생 창업 촉진 규정'을 제정했으며 각 지방에서도 '해외 유학생 창업원'을 별도로 설치해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자들에게는 거주상의 편의는 물론이고 각종 세제 혜택, 해외 송금 특례 등이 부여된다.
산학연(産學硏) 일체화를 통한 공격적인 기술 마케팅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산학연 협동 차원을 넘어 대학 및 연구기관이 직접 기업을 설립·운영하는 이른바 '교판산업(敎辦産業)'이 기술 경쟁력의 산실이 되고 있다.
칭화(淸華)대는 매출액 1조원에 이르는 칭화둥팡(同方) 그룹 외에 15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베이징대는 매출액 1조6,000억 원의 베이다팡쩡(北大方正) 그룹을 포함해 18개 기업을 운영 중이다. 국무원 직속 중국과학원은 매출액 4조5,000억원의 롄샹(聯想)그룹 등 21개 그룹을 산하에 두고 있다.
■한국은 윈-윈 전략 세워야
물론 현단계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여전히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에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외국기술을 이전받아 대량 생산하는 수준에 도달했으나 독자적 기술개발 능력은 부족하며,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중요한 점은 5년 후, 또는 10년 후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저가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추격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고부가 첨단제품과 기술력으로 뒤쫓고 있다. 한국은 우위 부문의 격차 유지를 위한 자체역량 강화와 함께 신개념의 윈-윈 협력전략을 세워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전할 것은 신속하게 이전하되 그 이상의 것을 받아내야 한다.
한국 옆에는 중국이라는 1개 국가가 아닌 31개의 새로운 국가, 즉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가 제각기 나서서 블랙홀처럼 FDI와 R&D 거점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경제적 생존변수로 다가오는 만큼 차기 정부는 범 부처 차원에서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홍 성 범 (洪性範)과학기술정책硏 연구위원
■차이나 핸드북
중국은 우주기술 분야에서 세계 선두그룹에 속해 있다.
우주선을 지구 궤도에 올렸다가 지상에서 다시 회수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또 자체 제조한 창정(長征) 로켓을 이용해 각국의 위성 발사를 대행함으로써 상업화에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 우주기술의 야심을 압축한 키워드는 '선저우(神舟) 계획'이다.
선저우는 1999년 11월 20일 발사해 21시간 11분간 지구 궤도를 비행한 뒤 귀환한 중국의 1호 무인우주선 명칭이다. 이어 한 달 뒤 발사한 무인우주선 선저우 2호도 약 7일간 지구 궤도를 108차례 비행하며 각종 실험을 끝내고 귀환했다. 올해 3월에는 선저우 3호도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의 우주계획은 2010년까지 달 착륙 성공과 이후의 우주정거장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92년 9월부터 유인 우주비행 사업을 국가적으로 추진해 왔다.
계획은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에서는 여러 차례 무인우주선 발사를 통해 확보한 기술로 유인우주선 발사를 성공시킨다. 2단계는 우주 유영 능력과 우주인의 단기 체류가 가능한 실험용 우주정거장을 발사하는 것이다. 3단계는 장기 체류가 가능하고 지구와 달의 징검다리로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우주정거장 건설이다.
우주계획은 중국의 자존심과 첨단기술 개발 전략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이미 칭화(淸華)대를 중심으로 한 기술개발팀에서 달 탐사를 위한 로봇 제작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1년 소련의 유인우주선 발사, 69년 미국의 달 착륙에 이어 21세기에는 중국의 우주시대도 열릴 전망이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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