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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햇볕정책, 새 이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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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햇볕정책, 새 이름이 필요하다

입력
2002.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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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2일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한 북한은 그 후 3주동안 영변 원자로 봉인제거와 감시카메라 무력화, 사용후 핵연료봉 원자로 이동,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 통고 등의 조치를 잇달아 취하며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이로써 북한은 지난 94년 IAEA와 맺었던 핵안전조치 협정을 사문화하고, 원폭 제조용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미국과 IAEA의 강경 대응이 예상되는 가운데 검은 구름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 핵이라는 첫 시련에 봉착하고 있다. 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가 부딪쳤던 IMF 사태에 비해서 북한 핵은 한층 더 어려운 과제다. IMF사태는 전 정부의 실정에서 온 것이었고, 국민은 금 모으기 등으로 위기극복에 적극 동참하고 있었다. 김대중 당선자에게 외환위기는 국민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북한은 훨씬 더 골치 아픈 대상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괄목할만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 남남갈등이란 말이 나왔을 만큼 보수계층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햇볕정책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그 정책을 추진하는 자세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런 부담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노 당선자는 햇볕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북 핵 문제가 터지고 대북 현금지원이 쟁점이 됐을 때도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남북간에 대화의 통로를 유지하고 있어야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남한이 북미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제는 그 정도의 입장 표명으로 부족하다. 노 당선자는 구체적으로 햇볕정책의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어떤 부분을 고칠 것인지 밝혀야 한다. 햇볕정책이란 말 대신 새 이름을 짓는 일도 생각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시절부터 써 온 햇볕정책이란 말은 냉전시대의 냄새를 풍기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북정책은 국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법 절차를 지키며 투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밀실협상, 독선적인 처리, 감상적인 민족애, 북한 감싸기 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북한을 감싸고 돈다는 인상을 주면 북한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정부가 곤경에 빠지게 된다. 정부의 해명이나 방어적인 자세는 북한을 위한 변명으로 들리고 정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대통령이 북한을 감싸면 대북 국방 정보 등의 책임자들이 냉정한 판단을 주저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햇볕정책은 북한이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기 때문에 필요했던 정책이다. 북한이 폭탄을 손에 들고 세계를 위협하며 소위 '벼랑 끝 외교'를 벌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93년에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곡예를 벌였다. 벼랑 끝 외교는 세계가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과 대치하며 긴장을 완화하고 교류를 확대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번에 핵 사태가 무사히 넘어가더라도 남북관계는 북한이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돌발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대응하여 갈등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북한이 핵 관련 조치들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북한이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을 계속하면 한국 내 여론의 지지도 받을 수 없고, 정부의 역할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교과서적인 성명을 내 놓으면서 북 핵 사태에 첫 발을 내딛었다.

노 당선자는 이제 김대중 시대의 대북정책을 기초로 노무현 시대의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햇볕정책의 성공과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기 바란다. 이번 핵 사태는 시작일 뿐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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