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빈부격차의 본질은 단순히 월급의 많고 적음만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살인적인 고금리, 그 이후 다시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패자들 가슴속에는 '평생 벌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패배감이 자리잡게 됐다. 더욱이 불평등 해소의 유일한 통로인 교육의 기회마저 경제력이 지배하게 되면서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빈부격차 해소없이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어둡다고 진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고성장세를 보이던 남미 국가들은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빈부격차 해소에는 비용이 수반되는 법. 과도한 재분배 정책과 빈곤층 지원은 경제활력을 저해하고, 나라의 재정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분배의 과다로 성장잠재력을 훼손당한 유럽 복지국가들의 실패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경제전문가들은 성장과 분배간 '상충(相衝)'을 '상생(相生)'으로 이끌어 내는 전략 마련이 노무현경제의 가장 큰 숙제라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분배정책, 즉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와 빈곤층에 대한 정부 보조'를 뛰어넘는 한국식 분배모델 개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재분배 정책보다 분배구조 개혁이 우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돈 벌려는 동기'를 꺾지 않는 게 중요하다. 조세연구원 성명재(成明宰)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벤처 설립 등으로 소위 신흥 고소득층이 대거 등장했다"며 "분배정책이 이런 사람들의 발목까지 잡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권인수위 경제2간사인 김대환(金大煥) 인하대 교수도 "부자들로부터 돈을 거둬 서민들에게 보전하는 과거 지향적 소득재분배는 부작용이 크다"며 "분배정책도 효율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위해 세율조정을 통한 재분배보다 분배의 틀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만들어진 파이를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파이를 만드는 과정의 불평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국신(安國臣) 중앙대 교수는 "한국사회 빈부격차의 근원은 근로소득 격차보다는 불로·탈루소득으로 대표되는 비정상적 재산형성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부동산을 투기 수단으로 이용, 불로소득을 축적하거나 세금탈루로 재산을 키워가는 분배구조를 개혁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안정과 조세정의 실현
국내연구기관들에 따르면 소득부문 지니계수는 0.32 수준인 반면 한국 부자들이 가장 집착하는 부동산의 지니계수는 0.86을 넘어섰다. 지니계수가 '1'이면 한사람이 모든 부를 소유하는 완전 불평등사회다. 부동산소득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일 뿐 아니라, '버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는 제로섬 자산이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심리적·물리적으로 가장 큰 충격과 좌절을 안겨준다. 여기에다 의사, 변호사, 고소득 자영업자 등 많은 부유층이 세원 은폐 등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현실은 빈부격차를 넘어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실제 미국의 소득 파악률이 72∼73%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소득 파악률은 25∼50%에 불과하다. 노무현 당선자가 제시한 많은 공약중에서도 부동산 안정과 철저한 세원발굴·세무조사를 통한 조세정의 실현에 분배정책의 초첨을 맞춰야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유경준(兪京濬) 박사는 "세원파악이 안돼 조세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세계적인 조세인하 경쟁을 감안하더라도 조세정책은 재분배를 위한 세율조정보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균등한 근로·교육 기회 제공
분배정책의 또하나 핵심과제는 근로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 일자리 창출은 실업자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빈곤대책이며, 교육개혁은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는 또한 성장과 분배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저소득층 교육실태' 조사에서 대도시 빈민지역 초·중생중 30%가 '노력을 해도 목표나 희망을 이룰 수 없다'고 대답해 충격을 주었다. 실업자라는 낙인은 서민들에게 가장 큰 물질적·심리적 고통이다. 김연명(金淵明) 중앙대 교수는 "사교육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빈부격차가 자녀세대로 고착화할 위험이 있으며, 과다한 실업은 사회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며 "교육개혁과 일자리 창출은 분배개선과 사회복지 차원에서 강력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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