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시장 안정에 효자노릇을 한 다가구·다세대 주택시장에 불황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폭발적으로 넘쳐나면서 서울 강남·송파·강서·도봉·은평구 등 다가구·다세대 밀집지역 중개업소마다 임대매물이 쌓이고, 임대수요 감소로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팔고 상가주택이나 아파트로 옮기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공급위축으로 이어져 또다시 주택시장의 불안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주택시장 안정에 기여
올해 주택 수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문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다. 외환위기 이후 주택공급부족으로 지난해 초부터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급상승하자 주택업자들이 앞다퉈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29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다가구·다세대 주택 공급은 1999년 5만9,715가구(건축허가 기준)에 불과했으나 2000년 10만2,488가구, 2001년 26만2,453가구로 늘었다. 여기에 올들어 10월말까지의 공급량은 36만5,369가구로 2000∼2001년 전체 공급분과 비슷한 규모다.
이 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40만 가구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당시 전체 주택공급 물량의 3.9%에 그쳤던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건설비중은 99년 14.8%, 2000년 23.6%, 2001면 49.5%로 급증했으며 올해 10월말까지 57.5%에 육박했다. 전체 주택공급량중 다가구·다세대 주택 비율이 절반을 상회하는 것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대표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이사철마다 반복됐던 '전세대란'을막는 등 주택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역(逆) 전세대란 등 부작용 속출
비어있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급격히 늘고 있다. 각종 지역정보지에는 이들 주택의 분양광고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창 공급 러시를 이루고 있는 송파구, 은평구, 강서구 등지에는 골목마다 다가구·다세대 주택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중개업소마다 매물만 쌓일 뿐, 세입자나 수요자는 찾기 어렵고, 계약을 기다리는 다가구·다세대 주택 분양사무실만 서울 곳곳에 널려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과잉공급과 전세값 하락이 맞물리면서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대란'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빈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늘어나자 소규모 주택업자들의 연쇄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선분양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중에 분양되지 않으면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렵다.
건축주들은 보통 공사비의 50% 정도를 금융기관을 끼고 있어 분양이 원할하게 돌아가야 융자금 상환은 물론 공사비와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퇴직금을 털어 주택을 구입, 임대주택사업을 시작한 정년 퇴직자 가운데 전세금 차액을 대신 내주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부터 집값이 급등하고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단독주택 소유주나 주택업자들이 은행 대출을 받아 우후죽순처럼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지었기 때문이다. 특히 10월부터 주차장법 개정으로 1가구당 주차공간 확보량이 0.7대에서 1대로 늘어나자, 법개정 이전에 주택업자들이 앞다퉈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내놓은 것도 공급과잉을 부추긴 요소다.
■투자 유의사항
전문가들은 앞으로 공급과잉에 따른 공실(空室) 증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인 만큼 다가구·다세대 주택 투자에 신중할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이사철을 맞아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전세로 얻을 경우 2년후 임대가 잘될 지 여부를 사전에 파악한뒤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아파트와 달리 가격 상승력이 낮고, 노후화가 빠른 만큼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 부실공사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전세가 하락을 거쳐 집값 폭락사태로 번져 경기위축 등 시장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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