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명랑(29)씨는 영등포시장의 식당집 둘째딸이다. 그의 연작소설 '삼오식당'(시공사 발행)의 화자의 자리와 같다. 작가에게는 하나도 낯설지 않은, 거칠고 시끄러운 시장 바닥이 최근 우리 문학에는 많이 낯설었다. 시장은 대낮부터 술을 들이부어 눈에 핏발이 서고 두 다리를 맥없이 휘청거리는 사내가 돌아다니는 곳이다. 마음에 둔 점원 사내를 놓고 보험 아줌마와 싸우다가 가슴을 물어뜯어 버리는 가게 아줌마, "내가 초등학생인 줄 알아, 아직도 자위 같은 거나 하고 있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여중생 계집애가 엉덩이를 붙이고 사는 곳이다. 질펀한 삶터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능청맞게 풀어놓는 이씨를 두고 선배 소설가 김형경씨는 '여자 성석제'라고 이름붙였다.이씨는 낮에는 과일장수로, 밤에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와 산문집 '행복한 과일가게'에서도 스스로 '고향'으로 부르는 영등포시장 얘기를 썼다. 새 소설 '삼오식당'도 작가의 신변을 연상시키는 묘사가 많다. 문학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과일밖에 모르는 과일 경매사와 결혼했다고 작가는 일찌감치 밝혀놓았다. 삼오식당집 둘째딸도 이씨처럼 대학원에 다니고 소설을 쓰고, 술에 절어 사는 '토박이 시장놈'과 결혼했다.
이 둘째딸이 들려주는 시장 이야기가 숨넘어갈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장터에서 오가는 입심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들려주는 화자의 말솜씨도 우악스럽다. 얼마나 입담이 센지 읽다 보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다. 이런 식이다. "박씨 할머니는 여봐란 듯이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눈동자에는 복수심마저 어려 있었다. 고물장사와 설거지로 한평생을 꾸려오면서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같이 흉을 보고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대던 삼오식당집 세 딸년들, 그중에서도 제일 지랄맞은 저 둘째년. 사람 말을 말 같지도 않게 듣던 고 괘씸한 구멍가게 영석이네의 반병신 딸년."
그런데 이 왁자지껄한 얘기를 한참 좇아가다 보면 문득 코끝이 시큰거린다. 0번 아줌마(가게 자리 번호가 0번이어서 이렇게 불린다)는 종업원과 바람이 났다. 남편이 노름빚을 지자 돈을 갚으라며 내쫓을 정도로 독했던 아줌마는 애인에겐 한없이 연약했다. 종업원의 아이를 덜컥 배고 나선 숨어서 아이를 낳았다. 그새 점원은 주인 몰래 가게돈을 빼돌렸다. 가게가 부도나자 집을 담보잡기로 작정했지만, 아줌마가 시장통에서 키운 딸자식들은 아줌마 못지않게 독했다. 사생아를 낳은 어머니를 주저없이 집 밖으로 내쫓은 게 세 딸들이었다.
농담 같은 수다 속에서 이씨가 슬쩍 흘려놓는 인생의 상처다. "여자가 돈 버는 거, 이것처럼 슬픈 인생이 어딨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제 손님 뺏길까 봐 금세 몸을 부대낀다. 박복한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그 박복한 생을 견뎌낼까, 라는 물음에서 이씨의 연작소설은 시작됐다. 그가 벌려놓는 이야기판의 사람들은 '더럽게 박복한'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운명에 비굴하게 무릎 꿇지 않는다. 작가가 실제로 함께 해온 시장통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소설이 섬뜩하게 살갗에 와 닿는 이유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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