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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 묻은 시름, 돋는 해에 품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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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 묻은 시름, 돋는 해에 품는 희망

입력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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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끝, 바닷가에서만 해를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이 올라도 남보다 먼저 해를 볼 수 있다. 어떤 산이 좋을까. 주요 산악회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이다.남한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리산이고, 바다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설악산이다. 태백산은 단군성전과 천제단 등이 있어 우리의 뿌리와 가장 밀접한 곳이다. 세 산에 오른다. 눈이 많이 왔다.

지리산

지리산 산행은 ‘고행’과 ‘산보’로 나뉜다.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고행이고 자동찻길 옆에 있는 노고단에 닿는 길은 산보이다.

천왕봉에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는 대원사 코스. 백두대간 완주나 지리산 종주의 출발코스 혹은 마무릿길이기도 하다. 대원사 계곡을 출발해 치밭목대피소를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가 법계사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19㎞로 13시간 정도 걸린다.

눈이 많이 와 아이젠까지 장착하면 3시간 이상 더 걸린다. 하절기에는 하루 일정으로 주파할 수 있지만 동절기에는 치밭목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1박2일 산행이 적당하다.

산행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너른 길을 따라 시작된다. 약 3.4㎞ 산보하듯 걸으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유평마을에 닿는다. 한판골을 따라 무제치기폭포에 이르는 길은 소박한 계곡길. 잠시 힘을 들여 치밭목대피소에 오르면 이후로는 능선 산행이다.

이 코스의 특징은 육산(肉山)인 지리산에서는 드물게 암릉길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 치밭목과 천왕봉 사이에 있는 써래봉이 그 주인공이다. 운무 속에서 살며시 얼굴을 드러내는 암봉들을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하는 산행의 맛이 일품이다. 고산 능선길은 험하고 길다. 즐거움 만큼의 땀이 필요하다.

노고단에 오르려면 자동차를 타고 노고단 턱 밑의 성삼재까지 오른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는 2.7㎞.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등산로가 아니라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다. 노고단 바로 아래에 있는 KBS 송신소로 장비와 인력을 옮기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

노고단 산행은 흐린 날이 제격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오르다보면 어느 덧 몸은 구름 속에 잠긴다. 그리고 구름을 벗어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진다. 구름은 발 아래에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지리산 10경 중 제1경이라고 하는 ‘노고단 운해’다. 이때부터 지리산에 대한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설악산

설악산 중 사람이 가장 붐비는 곳은 역시 외설악(강원 속초시)이다. 바다가 가깝고 권금성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이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산 끝자락에 있어 쉽게 참배할 수 있는 신흥사도 유혹적이다. 그래서 단풍철이나 휴가철에는 주차장이 터져 나간다.

외설악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설악의 계곡 중 으뜸이라는 천불동 계곡 코스다.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산길이다.

설악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평탄하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양쪽으로 산채와 막걸리를 파는 집이 이어져 있다. 마지막 상가 건물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비선대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찌를 듯 바위가 솟아있다. 관광객에게 있어 비선대는 반환점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발길을 돌린다. 비선대 바로 위의 붉은 아치교를 건너면 천불동 계곡의 시작이다.

천불동 계곡은 거의 협곡이다. 깎아지른 벼랑 사이로 푸른 물이 흐른다. 물은 고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폭포와 소가 이어져 있다. 길은 그 험한 바위절벽을 타고 나 있다. 모두 철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그래서 힘들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7시간이 걸리는 긴 산행길이다. 소청, 혹은 중청 산장에서 1박하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백담사 코스는 설악의 북쪽이다.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가 출발지이다. 백담사까지 약 8㎞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백담계곡을 끼고 나 있다. 평소에는 셔틀버스가 운행하지만 눈이 오면 운행을 멈춘다.

백담사를 거쳐 대청봉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코스 중간쯤에 위치한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면서 길은 가팔라진다. 칼날같이 솟은 용아장성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다. 관음폭포, 쌍폭 등 거대한 물줄기가 얼어 엄청난 얼음벽을 만들어 놓았다. 쌍폭 전망대에서 다리를 쉬어야 한다.

그 위로는 봉정암까지 이어지는 ‘공포의 깔딱고개’다. 깔딱고개는 고개가 아니다. 절벽이다. 네 발로 오른다. 어지간히 힘이 좋은 사람도 숨이 턱턱 막힌다.

봉정암을 지나면 다시 산세는 완만해 진다. 바쁘게 걷는 것도 좋지만 가끔 뒤를 돌아본다. 강원도 내륙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청, 중청봉을 거치면 대청봉에 닿는다. 소청봉부터 시선은 동쪽으로 향한다. 동해바다가 보인다.

태백산

태백산행은 가는 길부터 즐겁다. 서울서 5시간 안팎의 긴 여정이지만 길 옆으로 펼쳐지는 산세의 아름다운 풍광은 한눈 팔 여유를 주지 않는다. 특히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영월에 이르는 88번 지방도로, 석항에서 상동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변은 백두대간 골짜기의 운치를 과시한다.

그 즐거움의 정점에 해발 800여m의 고원도시 태백이 있다. 잘 나갔던 탄광도시로 흥청망청 질펀했던 과거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강원도의 어느 청정지역 못지않은 단아함을 되찾았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은 태백시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굽어보며 우뚝 솟아있다.

산 아래에는 민족의 시조 단군 왕검의 영정을 모신 단군성전이 있고 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다. 정상에 하얀 바위가 모여있어 태백(太白)이라는 이름을 낳게 했다는 문수봉도 보통 봉우리가 아니다.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가 산 전체를 감싼다.

태백시의 고도가 높기 때문에 정상까지는 700여m만 오르면 된다. 유일사입구, 당골광장, 백단사입구등 세 곳이 출발점이다. 중턱에서 길이 갈리거나 만나기 때문에 다양하게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유일사-장군봉-천제단-망경사-문수봉-당골광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11㎞로 5~6시간이 걸린다. 태백산의 명소를 모두 도는 대표적인 코스다.

문수봉과 당골광장을 잇는 길은 반재와 제당골을 거치는 두가지. 반재를 거쳐 당골계곡을 타면 계곡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약 400m의 가파른 길이 숨을 턱턱 막는다.

백단사-반재-망경사-천제단을 잇는 약 4㎞(2시간~2시간30분)의 코스와, 백단사-반재-문수봉으로 이어지는 4.2㎞(2시간20분~3시간) 구간도 추천할만 하다. 다소 메마른 등산길이지만 겨울에는 모습을 바꾼다. 비닐포대를 준비해 가면 능선의 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오궁(오리궁둥이) 썰매를 즐길 수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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