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교보문고가 발표한 2002년 베스트셀러 1∼3위의 제목이다. 모두 MBC 프로그램 '느낌표'에 소개된 것들이다. 발행 1년이 지난 구간(舊刊)들인데도 올해 베스트셀러 목록을 휩쓸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5위,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8위, '모랫말 아이들'이 10위를 차지해 '느낌표'에 소개된 책이 베스트셀러 10위 내에 무려 6종이나 포함됐다.
2001년 11월부터 방송된 '느낌표'에 소개된 책의 베스트셀러 독식 현상을 두고 한 해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출판계, 문화계 인사들은 "책을 오락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독서 편식증을 초래했다"며 이 프로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서 "'느낌표'는 책을 두려움도, 선망도, 경외심도 필요 없는 단순하고 통일된 '물건'으로 만들어 책의 존재 이유를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독서 외면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큰 공로"라고 옹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출판인회의 등은 11월부터 베스트셀러 대상에서 '느낌표'에 소개된 도서를 제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김영희 PD는 "'느낌표' 소개 도서가 줄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우리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이미 4월에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빼달라고 출판계에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신간 위주로 소개 도서를 선정하는 등 출판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2002년 출판계를 달군 또 하나의 이슈는 도서정가제였다.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7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발행 1년 이내 간행물에 한해 오프라인 서점은 정가, 온라인 서점은 10% 범위 내에서만 할인 판매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했다. 최고 50%까지 책값을 할인해온 일부 온라인 서점이 반발했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크게 반겼다.
그러나 구체적 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창작성이 떨어지는 학습서, 사전 등은 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인 반면 문화관광부와 출판계는 모든 도서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적용 도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문화관광부와 협의 후 2003년 1월 1일자로 대상을 고시할 예정이다.
6월 4일 종로서적의 부도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92년의 역사를 지닌 대형 서점의 효시였지만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후발 대형 서점과의 경쟁에서 진데다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 밀린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일부 출판계 인사가 종로서적을 살리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사실상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평지 '출판저널'의 발행처가 비영리법인 한국출판금고에서 이익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로 넘어가면서 신간목록지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출판저널은 326호(6월 20일자)로 휴간, 내년 2월 복간되는데 출협은 서평지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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