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와 이라크전쟁 가능성, 수급불안 등 '트리플 악재'가 부각되면서 연말 증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주가하락의 원인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투자심리가 당분간 살아나기 어렵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때문에 공격적인 주식 매입을 자제하면서, 내년 2분기 이후를 대비한 저가 분할매수 전략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연말 결산기 수급구조 악화
SK증권은 26일 최근 주가하락의 근본 원인은 북핵 문제 등 새로운 악재 때문이라기 보다는, 연말 단기적인 '수급불안'에 있다고 분석했다. SK증권은 지난해 말 증시 안정대책에 따라 유입된 주식저축의 만기 등으로 매물압력 증가 연말 결산을 앞둔 일반 법인들의 주식 매도를 통한 현금확보 국내 기관의 연말 자산건전성 요건 충족 등이 불러온 수급불안이 주가하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수급은 연초 회복세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는 만큼, 주가 반등에 대비한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신증권도 최근 주식시장의 급락세는 북핵 문제 등 지정학적 변수보다는 주식시장 자체의 수급불안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북핵 문제에 따른 국가 리스크 증가로 700선이 무너졌지만, 환율시장과 채권가격은 북핵 관련 위기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기업들의 연말 결산용 달러 매도가 나오면서 다소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1,200원을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채권수익률 역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며 북핵 위기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있다.
반면 연말이 다가오면서 수급구조는 크게 악화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20일까지 하루 평균 6,386억원의 거래금액을 기록했으나,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를 맞아 23일 3,404억원, 24일엔 2,200억원으로 거래금액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불거진 대통령 선거 이후 2,500억원 가량의 순매수를 보여 국가 리스크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기금과 금융기관 역시 연말을 앞두고 주식형 펀드 환매에 적극 나서고 있고, 개인은 해외 악재에 대한 불안심리로 20일 이후 1,500억원 가량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한투증권은 내년 1월까지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겠지만, 2월 중 이라크전과 맞물려 북핵 문제가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쟁 위기 고조 투자심리 위축
수급불안은 연말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뿐, 북핵 및 이라크 전쟁 위기에 따른 투자심리 악화가 주가하락의 근본 원인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우증권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전쟁 우려감이 수요를 억눌러 국내는 물론 미국 기업의 실적 개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준현 연구원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식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커 보인다"면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일단 배당을 받되, 신규 진입을 노리는 투자자의 경우 주식 매수 시기를 내년으로 미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연말에 이탈된 자금이 다음해 1월초에 다시 돌아오곤 했지만, 북핵 위기와 이라크전쟁 가능성 등 외부 악재로 인해 자금유입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원증권은 북한 핵문제에 따른 주가 급락을 오히려 매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훈석 연구원은 "최근 북핵 위기가 초래한 급락장세는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초 '서울 불바다' 발언에 따른 위기감 고조로 종합주가지수가 10% 이상 하락했던 때와 비슷하다"며 "당시 북한 움직임에 과잉반응을 보였던 주가는 이후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 시장의 선행적 판단으로 급속히 복원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주가 급락이 내년 경기와 기업수익 악화라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게 아닌데다, 북한 핵문제도 93년과 비슷하게 타협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향후 주가의 회복 가능성을 감안해 매수 타이밍 포착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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