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신할 새 추도시설 건립안이 흐지부지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내년에도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고 밝혀 벌써부터 내년 한국·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우려되고 있다.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의 자문기구인 '추도·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등 시설을 검토하는 간담회'는 24일 종교와 관계없는 새 국립 추도시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후쿠다 장관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새 국립시설은 기존 시설과 양립할 수 있다"고 밝혀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는 시설은 아니라고 규정했다.
특히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들도 새 시설의 추도 대상인지 여부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문제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새 시설이 건립된 뒤에도 야스쿠니는 그대로 둔다는 보고서는 핵심을 피해 간 현상유지안에 가깝다.
간담회는 당초 지난해 8월 고이즈미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데 대해 한국과 중국 및 일본 국내의 반발이 거세지자 총리 자신이 지시해 발족했다. 고이즈미는 간담회 발족 당시 "내외의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추도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전범이 배제된 새 추도시설이 건립된다면 나부터 참배하겠다"며 야스쿠니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기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그 뒤 올해 4월에도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간담회에서 논의가 한창인 8월에는 "야스쿠니는 야스쿠니이고 새 시설은 새 시설"이라고 김 빼는 발언을 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끝에 중일 수교 30주년을 맞아 9월로 예정됐던 고이즈미의 방중을 사실상 거절해 버렸다.
고이즈미는 간담회 보고서가 제출된 24일 밤에는 내년에도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고 분명히 밝혀 보고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새 시설 검토를 지시했다가 자신이 앞장서서 새 시설 논의를 방해한 셈이다.
자민당의 보수파 의원들은 새 시설이 야스쿠니의 의미를 감퇴시킨다며 아예 건립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5일 사설에서 "총리 스스로가 야스쿠니 참배를 고쳐 생각하는 것만이 새 시설을 정말로 살려가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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