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조치에 대해 2단계 분리 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다. 북한의 조치가 핵 연료봉 생산 및 5 ㎿ 원자로 가동에 그칠 경우와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를 강행할 경우 대응의 강도를 달리한다는 것이다.미국은 북한이 원자로를 가동하더라도 당장 심각할 정도의 위협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설보수, 시험운전, 핵 연료봉 장전 등 가동 준비에만 최소한 한두 달이 필요하고, 여기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핵 폭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양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 원자로 재가동을 위해 조만간 핵 연료봉을 재장전하겠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에게 통보했지만 이는 미국이 판단하는 긴박한 위험 수준은 아니다.
미 정부는 북한이 핵 시설에 대한 IAEA의 봉인을 뜯어내면서도 사찰단을 추방하거나 활동 자체를 봉쇄하지 않는 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감시 카메라 작동을 불능상태로 만들었지만 사찰단의 활동을 보장하는 한 IAEA의 안전조치이행 의무를 전적으로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핵 연료봉 재처리는 비교적 단기간 내에 플루토늄 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가 다르다.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전력 생산용이라는 명분과도 무관한 활동이기도 하다.
때문에 북한이 폐연료봉을 수조에서 꺼내는 순간 미국은 더욱 강력한 제재 수단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북한 핵 문제는 IAEA의 특별결의를 거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무대로 옮겨 갈 전망이다.
현재까지 북한의 조치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철저한 외면이다. 대화를 위해 위협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라면 잘못된 계산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하는 결과가 될 뿐이라는 식이다. 북한이 24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반도의 핵 문제에 절대로 제3자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며 북미간의 직접 대화를 촉구했지만 미 정부는 그것은 북한의 일방적 구애(求愛)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당분간 북한과 대화에 응하기보다는 주변국과 국제기구를 통해 외교적 압박의 고삐를 더욱 죄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조지 W 부시 정부는 빌 클린턴 정부 때와는 달리 북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며 "미국은 국제사회가 대 북한 제재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오히려 북한이 명분을 제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