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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盧 당선자댁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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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盧 당선자댁 경사

입력
200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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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역사적으로 부족과 부족,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신성한 의식이었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결혼에 의해 타인이 부부가 되고 적대관계의 부족이나 국가가 맹방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결혼은 연금술 같이 신비롭기도 하다. 결혼한 철학자든 미혼의 시인이든, 결혼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명언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예찬보다는 냉소의 말이 단연코 많다. '결혼하는 것이 좋은가, 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다.'(소크라테스) 결혼이라는 좌표는 아직도 천국과 지옥 사이의 넓은 공간에서 유동하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결혼이 '신비'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에서 그려진 권양숙 여사와의 만남은 통속적으로 비친다. 시골 한 동네에서 자란 그들의 결혼을 처음엔 양가에서 반대했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으면서도 물불 안 가리고 좋아했다. 둑길을 걸으며 돈 안 들이는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다. 결혼 후 부인이 구박하면 마귀할멈 같다가도, 추억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진다고 한다. 이런 모순된 행복을 그는 '신비'라고 부르는 듯하다.

■ 노 당선자 아들딸이 곧 결혼한다. 눈코 뜰 새 없던 대선기간을 피하고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2월 전에, 집안 경사를 치르려는 배려인 듯하다. 며느리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중매로 만난 사위는 사법연수원생이지만 편모슬하의 평범한 가정 사람이라고 한다. 노 당선자는 결혼식을 평범하고 조용하게 치르기 위해 고심 중이다. 청첩장은 개인적 연고를 가진 사람에게만 약간 보내며 축의금은 일절 받지 않을 예정이다. 흔히 호화 결혼식은 행복과 상관없는, 허영심의 발로일 뿐이다.

■ 대통령의 아들딸은 우리에게 선망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경계와 불신의 대상이기도 했다. 정경유착 적 결혼이 잦았고, 아들들이 비리와 부정으로 수감되면서 대통령까지 지탄받게 했다. 노 당선자는 대선 후 제주 민박에서 휴가를 보내는 등 파격적인 서민행보를 계속해 왔다. 그의 보통 사람이고자 하는, 또한 그 자녀의 보통 아들딸이고자 하는 의지가 존중됐으면 한다. 나아가 이 결혼식이 허식으로 치닫는 결혼식 풍습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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