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에서 이보다 더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삼성이 창단 21년 만에 프로야구 정상에 오르며 연출한 한국시리즈 6차전의 드라마는 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평가된다.삼성이 LG에 3승2패로 앞선 가운데 11월10일 대구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 8회말까지 LG의 9―6 리드가 이어지자 승부는 최종 7차전으로 넘어간 듯 했다. 우승시상을 위해 구장에 있던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도 귀경하기위해 대구공항으로 떠났다.
운명의 9회말. 선두타자 김재걸의 중월 2루타에 이은 브리또의 볼 넷으로 만들어진 1사 1, 2루의 기회서 앞선 타석까지 1할대타율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ejs 홈런타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누구도 예측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이승엽이 LG 구원투수 이상훈의 3구째를 통타, 우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려 순식간에 9―9 동점을 만들었다. 이승엽의 동점홈런은 기적의 신호탄이었다. 이어 타석에 선 마해영이 바뀐투수 최원호로부터 극적인 끝내기 솔로 홈런을 뺏어내 믿기지 않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 20년간 무관의 한에 사무친 삼성은 한국시리즈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처녀봉에 등정하는 감격을 누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삼성 선수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그라운드로 뛰어 나왔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평소 감정표현을 안 하기로 유명한 코끼리 김응용 감독도 이 순간 만큼은 어린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었다.
1982년 프로 원년 두산(당시 OB)에게 무릎을 꿇은 뒤 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번번이 우승문턱에서 주저 앉았던 삼성이 '7전8기' 끝에 마침내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승 제조기' 김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삼성 사령탑을 맡은 뒤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지만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았던 두산에 덜미를 잡혀 질긴 우승징크스를 떨쳐 버리지 못했던 김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V10의 위업을 이뤘다.
한 맺힌 우승 고지에 오르기 위한 일념으로 그 동안 전력보강을 위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삼성은 우승의 한을 풀며 삼성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한국판 밤비노의 저주'라고 불렸던 우승징크스에서 21년만에 벗어난 삼성이 내년 시즌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된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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