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은 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막강한 인사권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 부처 장을 비롯해 수 천 개의 자리를 좌지우지한다. 역대 정권에서는 인사 행정을 해본 경험도, 그 방면에 철학이나 비전도 없는 사람들이 정권 장악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능력 없는 사람들을 추천, 임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통치권자의 가족이나 측근, 가신이라는 이유로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고위공직자를 발탁하거나 쫓아내는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정작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 발탁을 가로막아왔던 게 사실이다. 지연 혈연 학연 등 정실인사나 무차별적인 낙하산식 인사도 논란이 돼 왔다.노무현 정권은 이 같은 관행을 극복하고 능력과 자질 위주의 탕평 인사를 통해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펼 수 있을까. 노 당선자의 인생 역정과 소신, 정치철학 등을 살펴볼 때 인사권을 최소한 정치적 고려나 현실적 타협의 수단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노 당선자가 계보·측근 정치, 지연·혈연·학연 등 정실 인사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유로운 것과 무관치 않다. 그 동안 정치권에서 항상 소수파로 존재, 자신의 계보를 만들지 못한 데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도전해온 점, 상고출신으로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합격한 점 등이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특히 "대선 때 고생한 참모들에게 상은 줄 수 있지만 자리는 어디까지나 능력"이라는 노 당선자의 말에서 탕평 인사에 대한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 당선자가 추구하는 인사원칙은 크게 인사시스템과 시장경쟁원리다. 철저히 능력(전문성)과 자질(잠재력)을 따지되 자신의 판단보다는 조직 내 시스템에 의한 검증을 중시한다. 이 같은 용병술은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선 후보 시절 단행한 인사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해수부 장관 시절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인사위원회를 전면 쇄신하고, 상급자·하급자가 상호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인사시스템을 구축, 승진 인사를 결정토록 했다. 나아가 과장급은 1년에 1명씩, 국장급은 3년에 한 명씩 물러나게 하는 '강제 퇴출 인사' 단행을 시도한 적도 있다. 노 당선자는 그의 저서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에서 "특정인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돼 인사가 공정성을 잃는다면 조직의 사기와 활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간적 친소 관계를 떠나, 역량을 갖춘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는 그의 실용주의적 노선은 선대위 본부장 인선 시 철저하게 실무적인 인사들로 진용을 짠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노 당선자의 인사정책에 대한 우려도 많다.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가 약한 데다 노 당선자의 주된 지지 기반이 민주당과 호남 인사인 점, 큰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적다는 점 등 때문이다. 회사원 조 모씨는 "대선에서 90%가 넘는 호남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노 당선자에게 큰 부담일 것"이라며 "이런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어 탕평 인사를 제대로 펼지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노 당선자가 직접 각 분야에 인재 추천을 의뢰하거나 미국처럼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인재를 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정한 인사를 위해 고향·학교 등 비선조직을 배제하고, 인적네트워크가 넉넉한 인사들을 통해 인재를 두루 등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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