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그리 좋은 흥행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찰리의 진실'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박중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똑똑한 배우. 영화 캐릭터와 다르지 않은 생활 속의 유머, 상상초월의 기억력과 매너, 뛰어난 시나리오 분석력, 1년 가까이 직접 쓴 칼럼을 통해 알려진 글 솜씨 등은 그가 최고 배우로 자리를 지켜온 데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한창 촬영중인 김상경(사진)은 올 초에 개봉한 '생활의 발견'으로 관객들은 물론 배우 기근의 영화계가 눈을 번쩍 뜰 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느물느물하면서 나른한 연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딱'인 캐릭터로 등장했고, 단 한편이었지만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차기작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그것도 이 시대 최고 배우 송강호와 나란히 어깨를 하고 살인현장에 서 있다. 분명 주목할 만한 배우다.
두 집 살림의 중심이 급기야 여자에게로 옮겨가는 시대를 맞았다. 들키지 않을 배짱이 있고, 간 크고 섹시한 여자가 옥탑에 숨겨두고 비밀스럽고도 당당하게 만나는 남자를 연기한 감우성은 2002년 한국영화의 신선한 수확이다. 감우성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뒤늦게 영화에 뛰어들었지만 여러 해 동안 영화를 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한 눈치. 부드러운 듯하지만 어딘가 까탈맞은 성격을 감추고 있을 법한 얼굴. 개인적 감정을 극도로 오버해 표현하면 휴 그랜트의 미소를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를 통해 "남자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애드립의 여왕으로, CF 여왕으로 군림중인 김정은. 올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한 '가문의 영광'의 일등 공신인 그녀는 역시 2003년에도 아주 바쁠 듯하다. 차분한 목소리와 안정적인 연기력에 흡입력까지 갖춘 여배우 장진영은 내년에 엄정화 이범수와 함께 영화 '싱글스'로 설렘을 안겨줄 예정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로 이정재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던 그녀는 김정은과 더불어 TV로 잠깐 나들이 간 여배우들 때문에 생긴 심리적인 공백을 거뜬히 메우고 있는 존재가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컴백을 기대할 수 없는 심은하의 대를 잇는 이영애의 파워는 '봄날은 간다' 이후 2002년 잠시 주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이미 목에까지 차있다.
2002년은 이리저리 따지고 보고 둘러 보아도 한국영화 편수에 비해 배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푸념들로 가득했다. 2003년에는 우리 곁에 있는 혹은 잠시 쉬고 있거나 외도중인 배우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선전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불록버스터의 연이은 실패로 거품비난에 휩싸인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사람들은 바로 그들, 스타이기 때문이다.
/영화칼럼니스트·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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