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희 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 병 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대선에 대한 사회문화적 평가
조희연= 이번 대선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특징적입니다. 특히 월드컵 구호가 '다이내믹 코리아'였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영 코리아'를 보는 것 같았지요. 실제 월드컵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의 역동성이 이번에는 '정치 개혁적 행동주의'로 표출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월드컵에서 표출된 20대의 역동성이 대선 국면으로 오게 되면서 80년대 정치혁명을 경험했던 30대의 정치개혁주의와 결합돼 선거혁명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통상 세대혁명이란 표현도 있는데, 우리사회 기성질서의 균열, 즉 정치권력, 지식권력, 언론권력의 카르텔이 균열된 것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면서 젊은 세대들이 기성 질서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건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이병훈= 이번 대선은 젊은 층의 힘이 표출된 하나의 사건으로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 세대 지형의 전반적인 변화로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젊은 세대들은 정치적 무관심 속에서 현실 틀에 안주하는 세대로 해석돼왔지만 이들이 월드컵과 대선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의 정치적 힘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메인스트림을 구현했습니다.
조희연= 이번 선거는 기성정치가 죽인 사람(노무현)을 인터넷이 살려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줬습니다. 이번 세대 혁명이 80년대의 정치혁명을 경험한 386세대와 월드컵 세대인 20대 인터넷 세대의 결합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현 20대가 갖고 있는 동질성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반권위주의인데 80년대의 20대들은 정치적 반권위주의였습니다. 80년대 6월항쟁은 정치혁명이었지만 문화혁명으로서는 한계가 있었지요. 정치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부분적으로 좌절된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생활세계에서 사회문화적인 반대와 도전을 키워왔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병훈= 젊은 세대들의 가치 지향점 뿐만 아니라 표출하는 행위 자체도 반권위주의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월드컵때 과거 권위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얼굴에 그리는 모습이라든지 노사모나 촛불시위에서 이전의 반독재 민주화운동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문제제기와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진 점이 그렇습니다. 촛불 하나로 수만의 사람이 응집되는, 분명 새로운 권위 행사 방식이 나타났습니다.
조희연= 노사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지요. 1987년부터 2002년까지를 제1기 민주화단계라 한다면, 이 시기에는 각종개혁이 추진됐지만 기성의 정치질서가 시민사회의 욕구를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후진적 정치질서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사회의 욕구가 분출했지만 그동안의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의 틀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노사모는 정치적 중립성의 틀을 넘어선 것으로 후진정치질서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병훈= 2000년 총선때 벌어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기성 정치질서에 대한 누적된 불만에서 나왔지만 네가티브 운동의 한계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국민경선, 대선까지 치르는 과정에서 노사모와 개혁적 국민정당 등 기존정치를 분명하게 바꿔나갈 수 있는 세력층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운동 방식 뿐 아니라 가치 지향점에서도 탈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세력화 를 이룬 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을 어떤 방식으로 제도내로 꽃피워나갈 수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조희연=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정치를 지배해왔던 냉전적 보수주의의 영향이 현저히 약화했다는 점입니다. 반미냐 친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는 이분법적 메카시즘적 논리가 정치지형을 좌우해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북풍이 전혀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요. 특히 반공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으로부터 20, 30대가 가장 자유로워졌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가 살아 넘치는 젊은 세대와 다분히 기가 죽은 구세대간에 소통 단절도 생길 수 있으므로 세대간 단절 극복을 위해 기성세대의 의식적 개방화와 해방이 필요합니다.
이는 주류(메인스트림)의 교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를 구주류의 복권 차원으로 접근했지만 구주류적 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과 비판이 근저에 놓여 있음을 간과했지요. 이번 대선은 앞으로 상당한 사회심리적 파장을 가져올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그동안 메인스트림에서 소외돼 있던 비주류의 권리의식이나 개혁에 대한 욕구가 훨씬 더 광범위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기성질서는 비주류의 자발적 묵종을 전제하지만 비주류가 이제 주류의 규율로부터의 해방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수용정도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시민사회의 욕구가 분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딜레마가 될 공산이 큽니다.
이병훈= 구주류는 문화사회담론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권력에서도 거부당했습니다. 노 당선자는 실제 정책 공약과는 별개로 서민대통령으로 부각됐는데, 지난 5년동안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 속에서 고통받은 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입니다. 앞으로 서민들을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조희연= 노후보의 당선은 한편으로 DJ 정권이 닦아놓은 정보 인프라 위에서 탄생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20, 30대의 인터넷 세대가 정치적 행동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망을 가진 한국의 기술적 조건위에서 가능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기성매체의 여론독점을 압도할 수 있는 대안적 소통수단으로 정착하고 있는데 이런 조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동유럽 혁명에서 팩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이번 대선은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것입니다. 정보화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이중적인 관계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정보화가 대의민주주의 한계성을 보완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일정 정도 실현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병훈= 1987년 이후의 민주화 과정을 두고 어떤 학자는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화 과정 속에서 사회민주화 부분에서 해체의 과정을 밟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즉, 군사주의, 가부장적인 기성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젊은 층의 자발적 참여 등을 감안하면 이제 해체적 민주화 단계에서 발전적 민주화 단계로 이행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희연= 그런 의미에서 가정이 정치적 의견이 격돌하는 현장이 됐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의 가정은 가부장의 권위가 관철되는 공간이었지만 가정내에 세대간 대화가 이뤄지면서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를 생활세계 민주화의 중요한 계기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의 사회정책 과제
조희연=사회정책은 큰 틀에서 보면 국민의 정부의 기조를 계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훨씬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느냐, 사회보장 정책과 결합하면서 전개되느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이 폭넓게 진행돼 왔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런 틀 위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보완하고 완충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광범위한 비정규직화, 소득분배의 악화 등 사회적 갈등요인이 등장했는데 이 같은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보완하고 재조정해야하는 시기로 봅니다.
이병훈= DJ 임기 5년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발전시킨다고 했지만, 실상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주력해왔습니다. 병행발전이라고 했지만 사회적 가치가 상당히 무시돼왔는데, 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려되는 대목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집단 이기주의를 어떻게 풀 것이냐 입니다. 아직 새로운 타협과 게임의 논리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분출되는 집단이기주의를 어떻게 조정하고 타협해낼 지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 수행능력의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조희연= 한국사회는 매우 동질적인 사회로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합니다.특히 교육문제가 그러한데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상쇄하는 기제로 작동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교육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재생산되거나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 대해 교육을 통한 사회적 특권의 재생산을 극복해달라는 요구가 제기될 것입니다. 구조적인 학벌체계 타파, 교육불평등 완화정책이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한 과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이병훈=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비정규직이 56.7%에 이르는 등 고용불안정성이 커졌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못지 않게 안정성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노무현 정부 동안 1인당 국민소득 만불 시대로 나아갈텐데, 서민 대통령답게 서민들이 일할 맛 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정리=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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