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등 각 경제부처에서 조만간 출범할 정권인수위원회에 대한 현안보고를 앞두고 '노무현 경제호(號)'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장 이번주중 발표될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에서부터 주요 구조조정 현안에 이르기까지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의 공약을 재검토하고 실현 가능한 선에서 '최대공약수'를 추출하기 위한 작업이 물밑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일단 당선 후 표명된 노 당선자의 신중한 입장이나, 현재의 '여소야대'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급격한 정책전환의 필요성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경제정책 방향에 노 당선자의 경제관을 어떻게 반영할 지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재정경제부
당장 내년도 경제운용방향에서 '7% 성장론' 등 노 당선자의 공약을 어떻게 소화할 지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다. 경제정책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중기(中期) 잠재성장률에서 1% 내외까지는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당장 성장률이 중요한 상황은 아닌 만큼 대기업·노동 정책 등과 유기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원칙적 추진론에 그쳤던 증권 집단소송제나 상속· 증여세법의 전반적 포괄주의 적용 문제도 노 당선자의 '컬러'가 두드러진 부분. 이에 대해 세제실이나 금융정책국 관계자는 모두 "일단 법률 제·개정문제와 연관된 만큼 노 당선자의 적극 추진론에도 불구하고 다소 시간이 걸릴 사안들"이라면서도 "적극적 입장에서 추진논리를 개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 소득세 최고율 인하 등 대통령령 개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인수위 보고를 통해 조기추진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 현안인 조흥은행 매각은 새 정부 출범과 관계 없이 전적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의사결정에 따라 일을 진척시킬 계획이다.
■산업자원부
노 당선자의 정책과 관련해 산자부가 당장 시험을 받게 될 현안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 공기업 민영화. 한전의 발전 자회사 가운데 우선 매각대상으로 선정된 남동발전은 이미 매각 입찰절차가 진행 중이고, 가스공사 민영화를 위한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남동발전 매각은 내년 초까지 우선협상 대상자를 결정할 예정이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가 미뤄진 가스산업 구조개편 관련 법안도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예정대로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기 정부의 의지에 반해 일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노 당선자의 취임 전에라도 정책 조율에 나서 민영화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자부측은 "노 당선자가 공기업의 경쟁 도입 필요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동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원전 폐기물 처분장 부지도 연내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일단 노 당선자측과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원전의 차질 없는 가동을 위해서는 폐기물 처분장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에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4∼5개 후보지만을 정해 추후 최종 후보지를 압축할지, 이번에 2개의 최종 후보지를 확정할 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 및 무역정책과 관련해서는 '7% 성장론'과 '주5일 근무제' 등 노 당선자의 노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향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다. 산자부 관계자는 "7%의 성장을 이루려면 결국 설비투자와 수출이 크게 늘고 기업활동이 그만큼 활발해야 한다는 게 대전제"라며 "주5일제 등 기업과 노조의 이견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현실을 감안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보통신부
정통부는 노 당선자가 정보기술(IT)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새 정권에서 정통부의 주요 정책 중 위축될 것은 거의 없다는 판단이다. 정통부는 벤처비리로 크게 위축된 IT벤처 육성책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문제가 됐던 벤처비리는 사실 산업화시대에 벌어졌던 정경유착에 따른 비리에 비해 규모나 내용면에서 심한 것이 아니었다"며 "고사상태에 빠진 IT벤처를 되살리기 위한 지원책을 인수위 업무보고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김상철기자 sckim@hk.co.kr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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