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슈퍼 파워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도처에서 반미의 물결도 도도해졌다. 자국 이익 우선의 정책으로 도덕적 국가의 이미지도 크게 떨어졌다. 약한 명분에 인권을 무시한 대 테러전, 이라크 전쟁 준비와 잇따른 국제협약 탈퇴로 일방주의 국가라는 비판에 직면한 지 오래다. 내부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던 경제 체제가 연이어 터진 회계 부정 사건으로 빛이 바랬다.하지만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30일자)가 '올해의 인물'로 '내부고발자'여성 3명을 선정한 것을 보며 그래도 미국민 속에 정의와 자기 혁신의 열정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주인공인 미 연방수사국(FBI) 전 요원 콜린 로울리, 회계 부정 사태의 핵심 기업인 월드컴과 엔론의 직원인 신시아 쿠퍼, 셰런 왓킨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내부 비리를 고발해 진실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타임은 밝혔다.
내부고발자가 늘 그렇듯 이들 역시 동료의 따가운 시선과 쏟아지는 비난, 정들었던 직장을 결국 떠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 여러 날 번민했다. 로울리는 사흘 동안 불면의 밤을 지샜다. 쿠퍼는 "울음을 멈출 수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약해 보이는 이 여성들이 불면과 공포 속에서 내린 결단은 하지만 고통을 뛰어넘는 엄청난 값어치가 있었다. 로울리의 고발은 미 국내 정보조직의 개편을 이끌었고, 쿠퍼와 왓킨스의 폭로는 미 대기업의 회계 관행을 혁신하는 데 기여했다.
더욱 인상 깊은 것은 미국민들의 60%가 이 내부고발자들을 '영웅'으로 부르는 데 찬성했으며, 75%가 조직의 부정을 목도했을 때 자신들도 주저 없이 내부고발자가 되겠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갖은 비난에도 미국이 강대국의 자리를 감당하는 것은 정의의 힘을 믿는 이런 국민 정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김범수 국제부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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