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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송공 실버프로' / "골목 호랑이할아버지"덕에 우리동네 살기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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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송공 실버프로' / "골목 호랑이할아버지"덕에 우리동네 살기 좋아졌어요

입력
200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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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방이1동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김준배(78)씨는 말 그대로 동네 터줏대감이다. 그렇지않아도 동네일이라면 소매를 걷어붙일 그가 요즘은 공식적인 골목 잔소리쟁이가 됐다.송파구에 의해 2년전 '골목호랑이 할아버지'로 임명된 그는 완장과 제복을 입고 매일 아침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떨어진 휴지도 줍고,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주민을 적발해 잔소리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깨진 가로등과 같이 공공시설을 점검하는 것도 임무다.

정년퇴직하기 전 10년간 동장을 지내 골목안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그로서는 골목안 한 귀퉁이가 비뚤어져 있어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실제로 그 자신이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의 골목 경찰 역할을 익히 봐왔다.

하지만 세태가 바뀐 탓인지 그의 '사명감'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젊은이를 나무라면 '당신이 누군데 간섭이냐'는 대꾸가 돌아왔고, 불법주차를 지적하면 '할 일없이 남의 일에 시비하는 늙은이'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2년 전 골목호랑이 할아버지 완장을 차면서 목소리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송파구청은 2000년 8월부터 송파구 거주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골목별 호랑이할아버지를 뽑아 골목 지킴이 역할을 맡기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골목청소에서 시설물보수는 물론 주민계도·단속 등의 일까지 맡은 475명의 남녀 노인들이 현재 동별 10∼30명씩 활동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최고령자는 84세. 70대만 해도 85명에 이르고 자신이 사는 골목에 10년이상 거주한 노인들이 반 이상이다.

'골목호랑이'란 명칭은 호랑이처럼 권위가 있었던 동네 어른들의 위상을 제도로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제복을 입고 호랑이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동네를 도는 노인들에 대해 주민들이 처음부터 환영한 것은 아니다. 새로 생긴 환경미화원 정도로 여기고, 무단 쓰레기 투기 적발이나 불법주차 단속에 대해서도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시비 속에서도 동네가 점점 깨끗해지고 고장난 공공시설이 즉각 보수되는 등 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주민들의 눈길은 점점 달라졌다. 등하굣길 자녀들의 보호·감시역이 생긴 것도 이들을 반기는 이유가 됐다.

골목호랑이 할아버지들에게 매일 아침 밥을 대접하거나 차를 내오는 주민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골목호랑이 할아버지 제도의 최고 수혜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라고 말한다. 일당 5,000원의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게 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순시하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정년 후 노인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됐다는 것에 가장 크게 상처받는다"고 말하는 김씨는 호랑이할아버지가 된 뒤 "아직 나의 역할이 남아있다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골목호랑이 할아버지 프로그램을 도입한 송파구청도 얻은 것이 많다. 노인복지 차원을 넘어 비용대비 행정 효과가 큰 모범적 프로그램으로 호평받고 있기 때문이다. 적은 예산으로 환경개선을 하고 주민 단합이란 부수적 효과까지 얻었다. 마침 2000년 말 동사무소 소관이었던 청소업무가 구청으로 이관되면서 이 프로그램의 효용은 더 커졌다. 구청인력으로는 엄두를 못냈지만 골목할아버지덕분에 송파구 내 264개 골목의 청소업무가 쉽게 해결된 것이다. 덕분에 골목호랑이할아버지 제도는 지난 10월 행정자치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동주최한 '지방자치단체 개혁박람회'에서 우수사례로 꼽혔고 최근 이 제도를 벤치마킹하려는 여타 지방자치단체의 문의도 줄을 잇는다.

송파구청 사회복지과 정상훈 과장은 "노인복지는 무조건 돈을 쓰는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실버프로그램의 주요 선례가 될 것"으로 설명했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결식노인 식사제공·실버악단·무료 건강검진… 송파구는 "실버들의 세상"

서울에서 가장 모범적인 실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송파구다. 노인종합사회복지관이 가장 먼저 세워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장례버스 무료 운행도 처음 도입했다. 129개 경로당 전체에 컴퓨터를 설치, 컴퓨터교육을 실시해와 지난 달엔 서울시로부터 우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았다. 또 지방자치단체로서 처음으로 집나간 치매노인 찾아주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실버악단 운영, 주민자치 실버대학, 컴퓨터경진대회 등 노인들의 삶의 질 지표에서도 서울시내 다른 구보다 크게 앞서있다. 송파구가 노인정책에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예산지표로도 잘 드러난다.

송파구의 고령화율은 4.9%로 우리나라의 평균 고령화율 7.9%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구 예산 가운데 노인복지 예산은 92억이 넘어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대부분 구청들의 실버예산이 4∼5%선이다. 송파구가 노인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면서 송파구로 거주지를 옮기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을 정도다.

송파구가 '실버세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이곳 구청장을 지낸 김성순 민주당의원과 이유택 현구청장의 노력 덕분이다. 구청장 역임 때부터 장애인과 노인복지에 힘을 쏟아온 김 의원은 국회에서도 노인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0년 8월 보궐선거로 당선된 이유택 구청장 역시 노인복지를 역점 정책으로 삼고 있다.

이 구청장이 노인행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은 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소일거리로 2년간 경로당을 출입하다가 점심을 굶는 노인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며느리에게 밥 차려달라는 말을 하기 미안해서'나 '가족들이 모두 외출해' 빵이나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그는 구청장으로 당선된 뒤 우선적으로 결식노인을 없애기로 하고 구청 예산과 후원자들을 모아 푸드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도 매일 2,700여명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 구청장은 "노인빈곤이나 소외는 알려진 것 보다 심각하다"며 "노인들의 생활기반인 지자체가 바로 노인복지 센터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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