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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8)겨울눈 속에 담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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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8)겨울눈 속에 담긴 봄

입력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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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보는 책 중에 '겨울철 낙엽수 식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낙엽이 모두 지고 난 겨울나무들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더러 수피(樹皮)가 회색으로 너덜거리는 물박달나무나 다이아몬드 무늬가 있는 은사시나무, 흰 껍질이 눈부신 자작나무처럼 수피로 구별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이렇게 매력적인 수피를 가진 것은 아니어서 겨울에 나무조사 혹은 나무구경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왔었죠.하지만 이 책의 등장으로 나무를 구별해내는 일에 계절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지요. 우리나라 최고의 원로 식물학자인 분이 오래 전, 겨울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길을 안내하던 촌로 한 분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나무 이름들을 척척 대더랍니다. 나무에 따라 줄기도 다르다는 그 노인의 말씀에, 당대 최고의 나무박사라고 자부하던 선생님은 자존심이 몹시 상했지만 크게 느끼셨답니다. 그때부터 나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야는 훨씬 깊고 넓어졌고 몇 십년 후 연구결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지요.

정말 눈여겨보면 가지의 모습은 신기하리만치 다릅니다. 특히 1년생 가지인 소지(小枝)의 모습은 변화 무쌍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겨울눈입니다. 가장 끝에 있으면서 가장 큰 눈은 보통 정아(頂芽)라고 부릅니다. 이변이 없는 한 내년이면 줄기와 꽃 혹은 잎이 될 녀석들입니다.

그 옆에도 눈들이 있습니다. 정아에 문제가 생기면 대신 새 가지로 자랄 예비군입니다. 숲에 가면 곧게 자라던 나무들 사이에 중간에 줄기가 갈라져 둘로 올라가는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정아(사람이름 같지요?)가 다쳐 양 옆의 눈(측아·側芽)들이 동시에 자라게 된 결과입니다. 어려움을 대비해 측아보다 더 작은 눈들이 주변에 있기도 하고, 아예 줄기 껍질 속에 들어가 있다가 위급할 때 터지는 잠자는 눈, 잠아(潛芽)도 있습니다.

이 눈들의 크기, 위치, 재질이 나무마다 다 다릅니다. 잎이 달렸던 흔적 속에는 양분을 날랐던 관속이 지나간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눈여겨보지 않아 몰랐던 신기한 겨울나무의 세계이지요. 들여다보면 메마른 가지 하나에 정말 놀랄만한 세상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눈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봄을 준비하는 희망에 있다고 봅니다. 다음주엔 이 겨울눈 속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한해를 마감할까 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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