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중학교 3학년 수학 담당 박순애(朴順愛·여·51) 교사의 수업 시작은 여느 시간과는 좀 다르다. 여기 저기 책과 잡지 등에서 골라낸 좋은 말들을 칠판에 쓰고 학생들과 함께 읽고 나서야 수업을 시작한다. 최근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읽은 말은 이것이다. "화는 마른 솔잎처럼 조용히 태우고 기뻐하는 일은 꽃처럼 향기롭게 하라."도곡중학교에서 그는 '봉사부장'으로 통한다. 지난해 부임 직후 다른 교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뜸 부탁부터 해댔다. "라자로의 마을이라고 아시죠. 한센병 환자 90여명이 함께 사는 곳인데요. 조금씩만 돕지 않으실래요." 그는 이 학교 교사 40명중 33명을 '라자로 마을 돕기회'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언주중, 개포중, 숭인여중 등 그가 거쳐온 학교에는 어김없이 '라자로 마을 돕기회'가 조직됐다.
부임 후 인사 겸 회식자리도 많은데 퇴근 시간이 되면 박 교사가 횅하니 자리를 먼저 뜨는 일이 잦았다. 알고 봤더니 학교 옆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가 있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무료 이동문고 봉사자로 나선 그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두시간여 입원실을 돌며 무료한 환자들에게 책을 건네는 일을 한다.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봉사일까지 맡았다. 일주일 중 이틀 저녁 시간을 그렇게 남들을 위해 쓴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봉사부장이고 스스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면서도 입가에 항상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그는 3학년 수련회를 앞둔 7월 수련회를 충북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으로 대신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그곳엘 왜 가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그곳에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득했고 어렵게 동의를 받아냈다. 소외된 이들로 가득한 음성꽃동네를 다녀온 250여명 학생들의 소감문은 하나같이 절절했다. "새로운 세상을 봤습니다.""내가 이곳에 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눈물이 났습니다."꽃동네 봉사활동이 끝나는 날 교사들은 만장일치로 내년 수련회도 이곳을 찾기로 했다.
올해로 교사생활 27년째인 박 교사가 남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선 것은 81년 크게 폐결핵을 앓고부터. 1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평탄한 삶을 즐기기만 하던 자신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이후 천주교 봉사단체에도 가입하고 나자로 마을 후원회 활동도 시작했다.
"교사인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남을 돕는 일이 가능했다"는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공식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남을 돕는 마음과 인성을 가르치는 일이 진짜 교사의 역할"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